아픈 몸, 그러나 더할 수 없이 좋은 지금

인터뷰(1) 삶 in 몸, 몸 in 삶

by 평온

우리가 서로 안 지는 꽤 됐는데, 이렇게 자신의 ‘몸’이라는 주제를 갖고 얘기를 나누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몸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몸이 ‘아픈’ 얘기밖에 할 게 없네요. 6년 전에 남편에게 건강 검진을 권했는데 쭈뼛거리길래 "그럼 우리 같이 하자"하고 검진을 받았어요. 근데 걱정했던 남편은 이상이 없고, 저는 담도암이라는 거예요. 전혀 증상이 없었거든요. 재빨리 수술을 했죠. 근데 그 후 오른쪽 폐, 왼쪽 폐에 전이가 돼서 총 3번의 수술을 했어요.

아픈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자기 일, 그것도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을 계속하시고, 모임도 활발히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일을 접고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닌지, 조심스럽지만 여쭤보고 싶네요.

갑작스럽긴 했지만, 남들처럼 우울하거나 좌절한다거나 이런 건 없었어요. 오히려 제 남편이 더 맘 아파하고 우울해했죠. 제가 심상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전혀 통증을 겪지 않아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다 의사가 따로 항암치료를 권하지 않아서 항암치료도 따로 안 받았어요. 술 안 마시고, 잘 먹으려 노력하는 정도라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아요. 가족들은 그래도 암 수술도 했는데 좀 쉬는 게 어떻냐고들 하는데, 제 성격이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쉬는 날은 집에서 냉장고를 청소하든, 화단을 뒤집어 놓든 계속 일을 만들어서 하는 성격이에요. 그걸 아니까 남편도 일을 그만두라는 말을 못 하겠대요. 일을 그만둔다고 가만있지 않을 걸 아는 거죠.

정말 아팠던 건 35살 때였죠. 궤양성 대장염이었는데, 벌써 18년 전이네요.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서 절제 안 하고도 치료가 가능하다던데, 그때는 대장 다 잘라내고, 소장도 일부 절제하고, 소장을 당겨서 항문에 직접 연결했어요. 소장이 대장 구실까지 제대로 해낼 때까지는 인공항문을 주머니처럼 차고 다녔어요. 정말 많이 아파서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텼죠. 그래서 그때 기억은 잘 나지도 않아요. 그렇게 항문 주머니를 차고도 골프장 캐디 일을 계속했어요. 경제적으로 절박했거든요.

첫 번째 남편은 시쳇말로 '양아치' 같은 남자였어요. 없는 돈에 고급차 몰고 다니고, 친구들이랑 몰려다니며 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근데 이 남자가 유부녀랑 바람이 났어요. 신용 불량자라서, 사업한답시고 여기저기 다 제 이름으로 돈은 빌려 놓고는, 제게 이혼을 요구하더라고요. 심지어 그 유부녀는 자기가 낳은 아이는 놓고 나오고, 우리 아이들을 키울 테니 나만 나가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일억 가까운 빚도 갚아야 하고, 아이들 데리고는 이도저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 질끈 감고 애들 두고 나왔어요. 물불 안 가리고 일했죠. 그 돈 다 갚고 작은 평수지만 주공아파트도 제 명의로 샀으니 정말 독하게 일한 거죠. 집에 가면 외롭고 지친 마음을 소주에 김치 하나로 달래며 살았던 게 다 병이 된 거죠.

그 아이들도 다 컸겠네요? 서로 연락은 하고 지내세요?

네, 두고 왔던 딸, 아들이 모두 20대가 돼서야 만나게 되었어요. 자기들 잘못은 쏙 빼고 자기들 버리고 간 못된 엄마로 만들었더라고요. 다행히 애들 큰아빠가 애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주어서 애들 오해도 풀렸어요. 4살 때 두고 온 딸이 이번에 아기를 낳아서 이제 저, 할머니가 됐어요. 손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반찬해 나르고, 아기 웃는 모습 보며 그 시절의 아픔이 조금씩 녹는 기분입니다. 제 딸도 그러길 바라고요.

며칠 전, 문자 보고 빵 터졌어요. 의자에서 떨어져 발목에 깁스를 하고서는 일 못하는 거보다 일요일 등산 못 가는 게 더 속상하다는 글 보고 이 정도면 ‘중독’ 아닌가 했어요.

요즘은 초등학교 동창들이란 오름등반 하는 재미에 폭 빠져 있거든요. 이번 주 일요일에도 삼다수 숲길에 가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맘이 설레고 막 기대가 됩니다. 다음 달에 북한산에 가기로 해서 체력 훈련에도 힘쓰고 있어요.

친구 한 명은 두부 담당, 나는 김치볶음, 편의점 사장인 친구가 막걸리를 가져와요. 저는 암 수술 이후 술 한 모금도 안 마셔요. 그래도 오름 같이 걷고 친구들과 수다 같이 떠는 즐거움으로, 한 주의 피곤함이 싹 날아가요.

일요일에 일하는 친구들은 평일에 올레길 걷기 하거든요. 그럼 저도 가게문 닫고 또 친구들과 올레길 걸으러 가요. 일만 일만 하느라, 큰 빚 갚느라 모르고 살았던, 제주도의 구석구석, 예쁘고 새로운 길들을 발견하고 걷는 즐거움이 커요. 막 신나고 설레요. 어쩔 땐 꿈에서도 올레길을 걸어요. (웃음)

오랜 기간, 서로 알고 지내왔는데 이제야 민이 씨에 대해 내밀한 부분까지 알게 됐네요. 우리는 모두 세상에 ‘점’ 같은 존재들이죠. 저라는 ‘점’과 민이 씨라는 ‘점’이 드디어 ‘선’으로 연결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202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