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23년부터 나이 듦, 질병, 돌봄에 관한 공부를 해 왔다. 코로나 19를 통과하며 돌봄 공백, 돌봄의 사각지대를 체감하던 시기였다. 성원들이 5, 60대라 직간접적으로 나이 드신 부모님을 돌보고 있었기에 우리의 공부는 실제 우리가 겪고 있는 돌봄 제도의 허점을 들추고, 편견을 뒤집고,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그런 길 위에서 <돌봄 현장의 목소리> 강연을 만났다. 6주간 만난, 7명의 강연자 분들은 적게는 10년에서 길게는 18년을 현장에서 종사해 온 분들이셨다. 모두 돌봄 현장에서의 고충과 보람을 공책에 손으로 꾹꾹 눌러 적어 오셨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부여잡으며, 선생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서...”라는 말로 조심스럽게 강연을 시작하셨다. 하지만 팔딱거리는 그 날것의 생명력 넘치는 이야기는 이제껏 ‘돌봄’을 활자로 경험하고, 단기간의 부모 간병 정도에 닫혀 있던 나의 모든 감각을 열고, 이 땅의 돌봄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 사람도 한때는 위대했었잖아요.”
여섯 번의 강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어느 누구든, 지금은 조력의 손길이 없으면 집 밖을 나올 수조차 없는 처지에 있더라도, 한때는 자기의 삶을 일구고, 가족을 돌보았던 ‘위대한’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는다. 재가방문 요양보호사 유희정 선생님의 말씀이다.
씻기를 거부하고 타인의 손길을 쳐내시며 집 안에서 버려진 짐승 (비유가 심하더라도 이해 바란다. 그 사례를 들을 때 내 느낌은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처럼 지내던, 치매와 활동 장애가 있는 80대 할머니. 유 선생님을 만나고, 이제는 예쁘게 차려입고 같이 나들이 다니는 낙으로 사신단다. 그 과정이 이렇게 단순한 몇 마디의 말처럼 쉬웠겠는가. 그 순간순간마다에는 할머니의 ‘위대했던’ 젊은 날을 상기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선생님의 노력이 땀으로, 한숨으로 새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경건해지는 순간이었다.
‘바람직한’의 실체를 보다.
선생님들의 강연을 되새기던 중에 문득 ‘바람직하다’라는 말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바람>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직하다>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하다>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군. 나는 6번의 강연에서 만난 선생님들에게서 ‘바람직한’ 돌봄의 실체를 본 듯하다.
움직임이 힘든 중증 장애인이나 어르신들을 직접 방문 진료하는 ‘왕진하는 의사’ 선생님을 보며 통합 돌봄, 전인적 케어의 모습을 기대하게 되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 우리를 규정짓는 사회복지 용어를 인권의 관점에서 교체하려고 노력한다는 복지사님의 강연에서는 더디지만, 상호 의존하고 연대하는 사회로 전진하는 우리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각자가 각자의 현장 – 사회복지사, 재가방문, 요양시설, 주간보호센터, 장애인 거주시설, 가정방문 간호 및 진료 등 –에서 장애인, 치매 환자, 어르신들에게 온기 어린 손길과 따스한 웃음으로 촘촘하게 돌봄을 제공하려 애쓰시는 모습들에 언제나 강연 마지막에는 진심을 다해 박수 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마무리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이 필요해!
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직종에 ‘요양보호사’가 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에너지, 그 온기가 우리의 탄생과 성장을 함께 해 왔듯 죽음의 순간까지 같이 할 것이다. 그 과정에 이 분들이 있다. 좀 더 나은 처우 개선을 요구함과 동시에 우리의 시선도 교정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내가 공동체에 제공하고 싶은 돌봄, 이후 내가 받고 싶은 ‘좋은 돌봄’이란 어떤 모습일까?
마을 안에서, 혹은 공동체 안에서 돌봄이 필요한 아이와 장애인과 노인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 몸과 병의 관리를 주치의와 상담하고, 요양보호사 혹은 재가 방문 서비스를 받는 나. 아프고 병든 몸이지만, 아니, 아프고 병들었기에 더 절실히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으로, 내가 그리는 죽음의 순간까지 당신들과 이웃으로 살아가고 싶을 것이다. 이제 같이 모여 떠들어대며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갈 시간이다. (2024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