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조울증,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아침, 운전하며 틀어놓은 오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Good morning son..We're still fighting it.~
왜 귀에 익지? 찾아보니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ost다. "아직도 우리는 그것과 싸우고 있어." 대학원 연수로 3주째 미국에 가 있는 큰 딸아이가 떠 올랐다. 그래, 우리는 아직도 그것과 싸우는 중이다. 그것과..
23년 2월, 여느 저녁처럼 하루를 반주로 마무리하던 우리 부부에게 걸려온 딸의 친구 전화는 우리의 일상을 순식간에 깨뜨려 버렸다. 단단해 보이지만 한 발짝만 내디뎌도 깨지는 살얼음판 같은 게 우리의 삶이었다. 그 친구는 우리 아이의 실종 신고를 부탁했다. 그 날 오후에 딸과 통화를 했는데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말투와 내용에 딸아이 집에 달려갔단다. 어수선한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전화기도 꺼져 있었다. 직접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려 했으나, 가족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하여 우리에게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실종신고를 하고 온갖 끔찍한 상상을 다 하던 끝에 딸과, 딸의 반려견 루모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 서너 명의 딸 친구들과 단체 톡방이 만들어졌다. 그 친구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도저히 혼자 놔두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딸을 찾아준 지구대에 하루 묵게 해달라 부탁하고, 다음날 새벽 비행기로 남편이 올라가 둘을 제주로 데리고 왔다.
안 씻겨 꼬질꼬질하고 털이 엉켜있는 루모,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딸의 모습에 모든 말들이 명치 끝에 탁 걸려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루모와 산책한다고 나가면 연락 두절이고, 한참 후 들어오면서는 도어락 번호를 잊는 아이.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의학과에 가보자 싶어 검색창에 뜬 병원들을 하나하나, 친구들이 추천하는 병원 하나하나 전화를 눌렀다. 세상에나, 당장 진료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 심지어 한 달 안에 가능한 데도 찾기 힘들었다. 여러 시도 끝에 결국은 제대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진단 결과는 양극성 정동장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은 제대병원 뿐인데 자리가 없어, 병원에서 연결해 준 곳으로 옮겼다. 폐쇄병동 입원 5일만에 아이가 호전되는 듯 했다. 당시 병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가족 품에서 약 잘 먹으며 안정을 찾는 게 더 좋을 거라는 판단을 하고 퇴원을 시켰다. 큰 착오이고 실수였다.
딸은 이틀 만에 더 심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증 시기에 나타나는 에너지 과잉으로 SNS에 물의를 일으키는데다 인터넷 쇼핑으로 수백 만 원을 지르고 있었다. 급기야 산책 나갔던 개를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왔다. 당근에라도 서둘러 올리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핸드폰을 잡은 나에게, 앉아서 핸드폰이나 보고 있냐며 티비 리모콘을 던졌다. 그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나 큰소리를 내지 않았던 아이의 행동은 나를 경악케 했다. 이미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다시 폐쇄병동 입원. 그 후 며칠이 지나고서 조심스럽게 조울병에 대해 언급했다. 딸도 조금씩 자기의 병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19일의 폐쇄병동 입원 끝에 딸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아이나 병든 부모가 아닌, 30이 다 된 성년의 자식을 돌본다는 건, 부모로서는 가슴 한 편이 무너지는 일이다. 잘 키워 이제 사회에 나가 제 몫의 삶을 살아가길 기대하는 시기에 아파서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온 자식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대학원 박사과정 1년 차에, 타 대학 강의를 시작하던 시기,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의 반응을 신나게 전하던 딸아이에게는 탄탄한 앞날이 펼쳐지리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시련이 있을 수 있나, 아이의 앞길을 생각하면 캄캄했다. 매일 밤 루모를 산책시키며 울컥울컥 눈물이 났다, 답답해서 파도 소리에 나의 한숨과 고함을 숨겨야 하는 하루하루였다.
퇴원과 동시에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정신의학과에서 받아온 약이 아이에게는 잘 맞는 듯 했으나, 거기에서 심리 상담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다. 5분~10분 환자의 상태를 귀로 들으며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에게서 환자의 심리 상태까지 들여다 봐주길 바랄 수 없었다. 10회에 150만 원이나 하는 상담이었지만 그 당시에 돈은 정말 중요치 않았다. 딸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해소할 수 있다면 뭐가 아까운가 하는 생각이었다.
가을을 넘기면서 딸은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많이 말렸다. 다시 혼자 올려 보내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을 차려 줄 테니 해봐라. 할아버지가 살던 집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보는 건 어떠냐, 공부를 하겠다면 제주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순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 조금씩 회복해 나가고 있고, 자기 앞길을 걸어 가겠다는 아이를 어찌 말리겠는가. 그거야말로 조울병에 대한 나의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 1년만에 서울로 딸과 루모는 다시 올라갔고, 딸의 두번 째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다시 서울생활을 선택했을 때 나는 어딘가에 찾아가 우리 딸을 잘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게 어디일까? 그런 데가 있기는 할까?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3년 1인 가구 비율은 35.5%, 783만 가구이다. 그 중 2~30대 청년 가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집집마다에서 청년들은 어떻게 외로움을 달래고, 일상을 영위해 나가고 있을까? 청년들의 정신건강, 마음챙김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의 니즈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듯하다. 또 고립과 은둔을 선택하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 그들의 생사 확인도 어렵다. 실제로 딸이 전화를 여러 번 안 받거나 메세지 확인을 몇 시간째 하지 않으면 나의 불안한 영혼은 서울로 달음박질 친다.
누군가와 싸워본 적 있는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올 지 몰라 긴장감으로 바짝 몸과 마음이 곤두 선 상태. 나는 아직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문득 나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거지? 상대는 보이지 않는데 왜 나는 서늘한 공격을 당하는 기분인 거지? 안갯속에 몸을 숨긴 거대한 괴물과 싸우고 있는 기분이다.
그것은 사람들을 틀에 집어넣으려는 ‘정상성’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나약해빠진 정신때문이라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라는 쓰레기 같은 충고일 때도 있다. 또한 무슨 사고만 나면 정신질환을 운운하는 드라마나 뉴스일 수도 있다. 그러다 다시 재발할 지도 모른다는 나 자신의 불안마저 괴물이 되고 만다. 딸 역시 정신질환자들의 커뮤니티와 연결, 후원하고 원고 기고를 하면서도자기가 일하고 공부하는 곳에서는 공개하길 꺼린다. 혹여나 병이 재발하게 되면 그 때는 큰 교통사고가 난 걸로 덮어달라고 말한다.
- 정상이란 게 뭔데? 우리 모두 어딘가에 조금씩 미쳐서 사는거 아냐? 안 그래?
삐딱선을 타본다. 정신질환에 대한 스펙트럼이 조금만 넓어져도 숨 좀 쉬겠다. 공동체 안에서 나도, 너도, 어떤 상황이든 존재를 인정받는 곳. 그 안에서라면 존재 자체로 삶이 충만해짐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아직 싸우고 있다. 그것과...
(2024.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