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통과한 나의 몸 말하기
흠흠!! 오늘도 저는 샤워를 하고 전신거울 앞에 섰습니다. 얼굴에는 잔뜩 기미와 주근깨, 주름이 하루가 다르게 자기 영역을 넓혀가고 있네요. 그 아래로는 남부럽지 않게 당당한 넓은 어깨, 젊었을 때는 존재 자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처짐으로 ‘나 여기 있음’을 알리는 가슴, 그 가슴보다 더 나온 뱃살... 에효,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음에 급히 눈을 내리깔고 거울에서 등을 돌리고 맙니다. 허기사 어제저녁에도 어김없이 남편과 나눠먹은 막걸리와 푸짐한 안주가 제 몸속에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테니 그럴 수밖에요.
쩝... 그래도 오늘은 제 몸의 역사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방대한 50년의 대하드라마가 펼쳐질 수도 있어서, 오늘은 겉에 드러난 상처들만 얘기해 볼게요. 연인을 바라보듯 사랑의 눈길을 견지하며, 그러나 자기 연민에는 절대 빠지지 않으며.. 자, 어디 봅시다!
제 오른쪽 종아리 안쪽에는 17센티미터의 기다란 상처가 있어요. 스물여섯 살의 여름, 밤새 제작한 홍보 전단지를 들고, 학교 앞으로 방학식 홍보를 나갔어요. 아이들에게 매력적이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모랑 쇼핑하다 지른, 굽이 10센티쯤 되는 하이힐을 신고 나갔죠. 홍보 다 끝내고 집에 가서 눈 좀 붙여야지 하며 계단을 내려가다 다리를 접질리고 말았어요. 아뿔싸, 하이힐이 문제였죠. 평소에 신던 대로 운동화 신고 갈 걸, 예쁘기만 한, 싸구려 하이힐 굽이 분질러지며 제 다리는 접질린 정도를 지나, 부러지는 정도를 지나, 다리 정강이뼈가 조각조각 부서졌다네요. 그 당시 정형외과 의사 말로는 ‘하이힐’이 정형외과 의사를 먹여 살릴 정도라며,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하더라구요. 조각조각난 다리뼈들을 기다란 쇠막대로 연결하고 고정하는 수술을 하고, 그 1년 후에는 쇠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어요. 그 당시에는 날만 궂어도 다리가 칭칭 아파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왼쪽 다리보다 더 튼튼한 강철다리로 거듭났답니다.
이제 더 위로 올라가 볼까요? 제 눈에는 안 보이지만 왼쪽 엉덩이에 화상자국이 있을 거예요. 선명히 보이는지 궁금하네요. 엉덩이 화상은 제 초등 2학년 때 난 자국입니다. 저 역시 K 장녀랍니다. 그때는 아직 막둥이 동생은 태어나지 않은 때라 제 아래 여동생만 세 명 있었어요. 부모님 모두 일 나가시고, 제가 곤로에 밥을 짓던 땐데, 부엌에는 따로 연탄통이 있었어요. 그 옆에서 저도 씻고, 동생들 몸을 씻겨주다 그만 그 연탄통에 엉덩이를 갖다 댄 거죠. 계란 수십 개를 프라이팬에 넣고 태우면 까만 계란 기름이 나와요. 그 계란 기름이 화상에 직방이라며, 매일 엉덩이를 까고 엎드린 저에게 발라주던 엄마의 젊은 모습과 내 어린 날의 풍경.‘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저도 그 시간에서 멀리 걸어 나와 이제는 웃으며 말하고 있네요.
이제 제 배로 가 볼까요? 가로로 긴 줄, 우리 둘째 출산의 현장입니다. 한 인간이 세상에 나온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우연과 우연이 겹쳐 일어나는, 신비로운 일인 거 같아요. 제가 40 즈음이던 어느 날, 아랫배가 살살 아픈 날이 여러 날 계속 되더라구요. 웬만하면 병원 가는 걸, 시험 보는 것만큼 싫어하는 제가 병원을 제 발로 갈 정도였던 걸 보면 꽤 많이 아팠던 거 같아요. 근데 내과에서는 산부인과로 가 보라는 거예요.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떨리는 가슴을 안고 산부인과로 갔죠. 근데 초음파 검사 결과, 자궁근종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 출산 계획이 없으면 (그 당시 저에게는 중학생 딸이 하나 있었고, 출산계획은 없었어요.) 자궁적출 수술을 하자고 하더라구요. 어쨌냐구요? 박차고 나왔죠! 그리고는 또 다른 산부인과에서 상담을 받으면서, 많은 의사들이 여성의 자궁을 오로지 출산을 위한 신체기관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에 크게 놀랐어요.
제가 그 일이 있기 전에 이유명호 선생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지금은 ‘안녕, 나의 자궁’으로 개정되었네요.) 자궁적출 후의 후유증, 폐경 후 근종은 작아질 수 있다는 연구 내용도 알고 있었기에, 저는 근종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기로 했답니다.
그 후에 둘째를 갖게 된 거예요. 세상에나! 제가 자궁 적출을 권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말에 수술을 했다면 제 둘째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잖아요? 그때 제 결정에 스스로 제 머리를 쓰담쓰담하게 되네요. (둘째도 저처럼 다행이라고 생각 헸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첫째는 자연 분만이었지만, 둘째는 자궁근종 때문에 제왕절개를 했어요. 그 흔적이 지금 당당히 제 배에 남아 있는 거랍니다.
벌써 50대 중후반, 빠릿빠릿한 정신만으로 삶을 끌고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던 전투적이고 맹랑했던 저는 이제 “오늘 하루 걸어야 노년에 하루 더 걸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운동화를 신습니다. 현관을 나서기 전 다시 거울로 저를 들여다봅니다. 어느 책 제목이었던가요? 그래도 잘 살아왔고, 잘 살아가고 있고, 잘 살아갈 저 자신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줍니다. 저는 이제 오늘 하루 분량의 걷기를 위해 현관문을 나섭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