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비에도 지지 않고>
일본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 미야자와 겐지가
1931년 11월 3일 수첩에 처음 적은 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우리나라에 각각 다른 그림작가와 출판사로 세 가지 버전이 나와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뜻일 텐데, 그중에서도 저는 제일 먼저 국내에 소개된,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야마무라 코지의 그림책을 옆에 두고 자주 펼쳐봅니다.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 <비에도 지지 않고> 중
우리 집 거실 벽에는 <단순하게 소박하게>라고 쓰인 패브릭 포스터가 걸려 있습니다. 제 삶의 모토가 되는 글귀입니다. 삶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권정생 선생님, 톨스토이, 스콧 니어링, 헬렌 니어링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나는 욕심과 욕망 덩어리입니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과는 전혀 걸맞지 않은 생활을 합니다. 거하게 먹고, 마시고, 사고, 버립니다. 돈을 좇고, 풍족한 삶을 추구하는 자본의 노예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검소와 소박은 철학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비에도 지지 않고> 중
주위로부터 '멍청이'라 불리지 않으려고, 아니 '똑똑하다'하는 평가를 받으려고 하다 보니 말은 많아지고, 행동은 급해지고, 관계는 어설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요즘 신나게 잘 살고 있어."라고 나마저 속이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고, 다시 <비에도 지지 않고>를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며칠을 곰곰 생각했습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나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단단한 삶.
다시 또 물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저에게는 '쓰는' 것만이 그 답이라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나의 비뚤린 욕망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 들여다보기, 나의 욕구와 공허감을 무시하지 않고 바르게 채울 수 있는 길라잡이를 찾기, 그 과정이 나의 쓰기입니다.
살아가며 바래버린 나의 자존감과 쪼그라들어버린 나의 정체성을 쓰다듬어 주고 다시 제 빛깔과 모양을 찾는 것이 나의 쓰기입니다.
이제야말로 남 눈치 안 보고 제 생긴 대로, 마음먹은 대로 내가 가고자 하고, 하고자 하는 곳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의 방향마저 트는 것 또한 나의 쓰기입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쓰는 여자>로 살 결심을 다시 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