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조근 제주 신화 2>
3월의 첫날, 동백동산에 겨울 숲 답사를 갔다. 동백동산이라니 동백꽃을 눈에 실컷 담을 수 있겠다 잔뜩 기대했는데. 숲 초입에 조금 피었을 뿐, 숲길에는 꽃이 보이지 않았다. 동백꽃 없는 동백동산이라니, 아쉬워하는 우리에게 곶자왈 해설사님은 나무는 햇빛을 받아 그 에너지로 꽃을 피우는 것이라 했다. 10미터가 넘는 교목들 사이에서 동백나무들은 햇빛을 받을 수 없으니 꽃도 피울 수 없는 것이라 하던가. 숲 속은 어두컴컴하고 키 큰 나무들은 목이 아프게 고개를 들어야 그 끝을 볼 수 있고, 거기에 동백꽃은 없었다.
숲길을 한참 걷고 있는데, 해설사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했다. 교목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만 보니 나무와 나무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빛의 길이 보였다. 실개울 같기도 실지렁이 같기도 하지만 또렷하게 빛의 틈들이 보였다. 숲은 경쟁과 공생을 반복하며 살아간단다. 키가 클 때까지는 조금이라도 빛을 더 받으려 앞다투어 커 나가지만, 그 크기를 다한 후에는 햇빛을 골고루 나눠 갖기 위해 이웃 나무와의 불가침 협정 같은 것을 맺나 보다.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서로 맞닿지 않게 울타리처럼 빛의 선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를 통과한 빛은 숲 바닥까지 내려와 작은 고사리풀과 관목들에게까지 미친다, 비록 꽃을 피울 만큼의 빛은 아니지만. 신기한 마음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하늘을 쳐다보며 감탄했다. 어찌 동물들의 세상을 보아도, 숲의 세계를 보아도 인간이 가장 모자라다 싶다. 끝 간 데 없는 탐욕, 전쟁과 살육, 거기에 희생되는 가장 약한 존재들...
한 달에 한 번 전시회 가기 모임에서 <유리 코스모스>라는 작품을 만났다. 밀실만큼이나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자 수백 개의 유리 전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양한 폭력의 생존자와 치유자가 숨을 불어넣어 만든 유리 전구들이란다. 전시장을 빙 둘러 가며 4개의 센서가 있었고, 관람객이 거기에 후~ 숨을 불어넣으면 그 숨이 닿는 전구들이 차례로 빛을 발한다. 전구 하나하나에는 참여자들이 제공한 주소의 번지가 새겨져 있어 하나의 전구가 하나의 존재이며, 하나의 생명임을 말해 준다. 내가 후~ 후우~ 부는 숨이 그 전구들을 하나씩 켜지게 하는데, 그들의 존재 하나하나에 가닿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숨이 끊어졌다.”, ‘목숨“ 줄줄이 떠오르는 숨의 언어들. '숨'은 가장 연약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가장 강한 것이기도 하다. 숨 막히는 현실을 딛고,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숨을 불어넣어 만든 유리 전구에 나의 숨이 가닿아 같은 공간을 빛으로 채우는 시간. 그때 나는 그와 다른 사람이 아니다. 같이 공생하고 조화를 꿈꾸는 우리가 되었다. 숲의 나무들처럼 빛의 길을 내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라 살아라 같이 살자 어기야디야’ 외치는 응원의 소리, 빛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눈이 어느새 화끈해지더니, 비 맞는 가로등처럼 전구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그 자리에 한참 머물다 나왔다.
누군가에게 숨을 불어넣어 살리는 이야기를 내내 생각하다 <연이와 버들도령>이 떠올랐다. 이 이야기에서 연이는 억울하게 죽은 버들도령을 살살이 꽃, 피살이 꽃, 숨살이 꽃으로 살려낸다. 1만 8천 신들의 고향이라는 제주의 신화에도 환상과 신비의 서천꽃밭 이야기가 나온다. 저승에 있다는 서천꽃밭에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신비의 주술꽃들이 자란다고 했다. 사람을 살리고 번성케 하는 생명꽃, 번성꽃, 재앙을 내리고 사람을 죽이는 수레멸망악심꽃도 있다. 그런가 하면 웃음웃을꽃, 싸움싸울꽃까지.
이공본풀이를 하는 심방(무당)이
들고 있는 꽃은 동백꽃이다.
겨울의 끝자락, 매서운 바람을 뚫고 빨갛게 피어난 동백꽃은
신화에서 ‘생명꽃, 환생꽃, 번성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심방이 굿을 할 때
아이를 낳게 하거나
아이를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하면서
항상 동백꽃을 드는 것이다.”
- <조근조근 제주신화 2>에서 발췌
숲에서 볼 수 없었던 동백을 SNS를 통해 보고, 굿즈 샵에서, 티브이에서 본다. 그리고 4월이 되면 제주 사람들의 가슴가슴마다 배지로 달랑달랑 피어있다. 동백꽃은 제주도민들에게는 4.3 희생자들의 몸이고, 넋이고, 외침이다. 붉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한 생명이고, 뚝 통째로 떨어져 버리는 통꽃이 그들의 죽음이다. 그래서 제주의 동백꽃은 그 아름다움으로, 그 낙화로 우리에게 아직도 울림을 주고 있다. 잊지 말아 달라는 듯..... 그들에게도 나는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기억만으로도, 추모만으로도 숨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런 글도 어쩌면 ‘숨’이 되어줄 수 있을까?
삶이 죽음으로 끝나고 그 죽음을 덮고 다시 삶이 시작되는 자리, 그 자리에 꽃이 피고 있다.
나는 온 세상 꽃이 피는 봄에 낙화를 보고 있다.
대학 1학년 4월, 20명 (우리 과 정원이 20명이었다. 모두 여자였고.)이 잔디밭에 앉았다. 4.3에 대한 1차 토의, 각자 집안 어른에게 4.3에 대해 여쭤보고 오자고 했다. 6.25 참전 군인이었던, 나의 외할아버지는 뭐라 했더라. 그때만 해도 쉬쉬하던 일이었고, 아픈 주제였으며, 공식적으로 4.3에 대한 공론화가 안되던 시절이었다. 속솜허라.(조용해라). 똑똑한 청년들은 결국 다 죽었쪄. 앞에 나서지 말라. 그러다 빨간 줄 그어지면 선생 못헌다.
4월 3일, 우리는 다시 토의를 하고, 광장에 모여 4.3 추모 집회를 하고 시청까지 행진하자며
교문을 나섰지만, 정문 앞에서 막히고 말았다.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저편에는 전경들이 서 있고, 이편에는 풍물패와 기다란 대나무 끝에 깃발을 매단 선봉대가 서 있었다. 그 뒤에 서있던 우리는 <제주도의 노래>와 <투사의 노래(양희은, 군인의 노래 개사)>를 부르고 4.3 진상 규명의 구호를 외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에도 벚꽃 피는 제주대학교 입구 길은 탄식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우리가 노래하면 거기에 맞춰 흥얼거리듯, 구호를 외칠 때는 그 힘찬 소리에 놀란 듯 4월의 벚꽃이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살랑이며 꽃비가 내리는 그 길에서 햇빛에 반짝이며 떨어지는 벚꽃에 같이 하늘하늘거리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구호를 외치다 터지는 최루탄에 눈물지으며 뒤를 돌아 교문 안으로 후퇴하기도 했다. 그때는 우리 모두가 반짝이는 꽃잎들이었다.
조그만 별들이 모여 은하수를 이루고, 모래알이 모여 십 리의 백사장을 만들듯 우리는 그렇게 한데 모여 꽃처럼 별처럼 4월의 봄을, 청춘의 봄을 노래했다. 4.3의 넋을 불러내 다시 살리는 꽃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