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감정이 설계보다 앞설 때
디자이너도 결국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고 산다. 완벽하려는 강박, 도덕적으로 흠잡히지 않으려는 태도, 그 모든 것이 공감을 가두고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실수와 부끄러움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게 만드는 통로다. 감정이 설계보다 앞설 때, 디자인은 비로소 살아난다.
한때 나도 그랬다. 작은 실수 하나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늘 정답을 찾아 헤맸다.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악플 몇 개에도 쉽게 흔들렸고,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그 결과, 나는 틀리지 않았지만 감정이 없는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다. 완벽하려는 강박은 결국 나의 공감 능력을 줄였다. 실수를 피하려는 마음이, 새로운 시도와 이해의 폭을 제한한 것이다.
어느 프로젝트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초반에 달린 몇 개의 악플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 댓글들은 깊이 있는 비판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때 “틀리지 않으려는 나 자신”에 갇혀 있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멈췄다. 실패가 아니라, “실패할 기회조차 잃은 실패”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필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용기였다. 감정의 상처를 피하려다, 배움의 기회를 잃었다.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던 나는, 흡연자를 늘 “나쁜 선택을 하는 사람들”로만 봤다. 하지만 그 시선이 바로 이해의 한계였다.
“도덕은 사람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오해하게도 한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래서 일부러 불편한 시선을 경험해 봤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동기와 감정을 직접 관찰했다.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됐다 — 사람은 옳고 그름보다 감정의 이유로 움직인다는 걸.
도덕적 기준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은 ‘문제없는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사람을 이해하는 디자이너’가 되기는 어렵다. 실수, 불편함, 부끄러움. 이 모든 감정은 인간의 복잡성을 배우는 과정이다.
나는 도덕적으로는 문제없었지만, 인간적으로는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인정한 순간, 타인의 감정선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UX/UI에서 공감이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UX/UI는 논리와 시스템으로 구성되지만, 출발점은 언제나 감정이다. 완벽주의와 윤리 강박은 안정된 디자인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죽은 디자인을 만든다. 모난 감정이 사라진 화면은 사람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도덕의 변두리에서 겪은 부끄러움은 나를 더 섬세한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이해하지 못하던 감정들을 체험하면서, 비로소 ‘사람의 UX’를 설계할 수 있었다.
실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이해의 입구다. 도덕의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감정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UX가 완성된다. 감정이 설계보다 앞설 때, 디자인은 인간을 닮는다.
“틀리지 않으려는 강박은 공감을 가둔다.”
“실패보다 무서운 건, 실패할 기회를 잃는 일이다.”
“감정이 설계를 앞설 때, 디자인은 인간을 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