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그와 같이 밥을 먹었다. 다른 가족들은 항상 따로 음식을 차려내 식사를 했지만, 나만은 그와 같이 먹었다. 대청마루 위, 동그란 밥상머리에 대칭을 이룬 자리에서 그와 마주 앉아 밥숟가락을 뜨면 그는 항상 싱싱한 고등어살을 내 숟가락에 얹어 주었다.
“아잉 안 먹어, 이거 맛없어.”
“에헤이, 이거 몸에 좋은 거야. 먹어. 먹어.”
입이 짧았던 나는 대부분의 반찬을 거부했고, 그는 몸에 좋고 비싼 반찬을 항상 내 숟가락에 얹으려 노력했다. 대부분 그가 졌고, 가끔 내가 졌다.
총총한 별빛이 빛나는 밤이면 화장실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특히 그의 집은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시골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위험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무심코 알게 된 무서운 옛날이야기 때문에 나는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은 밤에는 절대로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헛간에는 귀신이 나온대, 그리고는 파란 휴지를 줄지, 빨간 휴지를 줄지 묻는다는 거야.”
그런 나를 위해 그는 언제든 나의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같이 가 주었다.
“거기 있는 거 맞지? 나 너무 무서워.”
“여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일이나 잘 봐.”
그는 투박한 손을 가졌다. 그 투박한 손으로 동그랗고 이쁜 사과 농사를 지었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사과는 정말이지 달콤했다. 빠알갛게 익은 사과를 반으로 자르면 진한 꿀이 한 움큼 들어가 있었다. 착한 사람 손맛은 사과도 아는 걸까.
깊은 쌍꺼풀, 착한 콧날, 그리고 얇지만 앙다문 입술을 가진 그가 경운기를 몰 때는 젊은 시절의 신성일 같았다. 목소리는 얼마나 좋은지, 가천면에서 제일가는 가수였다. 그가 노래를 부르면 온 동네 사람들이 엄지를 척 들었다.
그는 이름 없이 태어난 것만 같은 들꽃마저도 무슨 이름인지 다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사과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때면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모든 들꽃의 이름을 물었다.
“이거는? 이거는? 그럼 이거는?”
그러면 그는 그런 내가 꽤 귀찮을 텐데도 내색하나 보이지 않고 제비꽃이며 애기똥풀같이 귀여운 들꽃 이름을 성심성의껏 알려주었다.
사실 그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나는 제일 큰 외손녀였지만 내 밑으로도 손자 다섯에 손녀 넷. 우리들이 재롱을 부리면 할아버지는 점잖게 의자에 앉아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도 어린 사람, 나이 많은 사람 가리지 않고 그는 인기쟁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일 많이 사랑했고 그에게 사랑받았던 외할머니조차 나와 외할아버지 사이는 짐짓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같은 호랭이띠라서 저렇게 잘 맞는가 보다 야~”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싱긋 웃었다.
외가에 가면 항상 그는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몸에서는 군고구마 냄새가 났다. 나뭇가지, 낙엽, 종이 쓰레기 같은 것들이 아궁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들이 자신들의 몸을 태워 만드는 연기는 그의 얼굴로 향했고, 그는 연기를 손으로 휘휘 내저으면서도 불을 활활 지피기 위해 아궁이에 무언가를 계속 넣어댔다. 나는 도시에서 지친 몸을 그의 아랫목에서 지지며 풀어냈다. 화덕에 불이 활활 타오를수록, 그의 머리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주름은 깊어져 갔다.
그 사이, 나쁜 세포는 그의 몸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던 총기는 점점 옅어지고 몸은 여위어 갔다. 항암치료를 할 때면 모든 가족이 손을 모아 기도했다. 좀 더 옆에 계셔달라고. 그의 몸이 점점 약해져 간다는 것을 모두 알았지만 다 함께 모른 척했다. 그래야만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마지막 발자국조차 자식들에게 짐을 지기 싫었던지 꿈꾸듯 하늘나라로 갔다. 마지막 모습까지 그는 아름다웠다.
얼마 전, 외할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가 있는 영면 공원에 다녀왔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의 묘비를 정성스레 닦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진성 [안동역 앞에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