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니른함은
틀림없이 고양이의 것이다.
햇살 아래 냥이는 진리고
녀석들의 나른함은 나를 사랑에 빠지게 한디.
30대에 딸기, 딸꾹이를 만났을 때
녀석들의 나른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쁜 세상에서 저리 한가로울까?
복에 겨운 탓이라고 생각했다.
음… 너희가 집사를 잘 만났어.
세월이 쌓여 40이 되고 50줄에 접어들며
나도 변하고 우리집 냥이도 바뀌었다.
이제는 딸랑이, 딸콩이, 딸님이가
딸기, 딸꾹이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내 자신과 내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여전히 우리집 곳곳에서
냥이들이 나른함을
흘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30대에 만난 녀석들의 나른함과
50대에 마주하는 녀석들의 나른함은
같은 나른함이지만
다른 나른함이 되었다.
50대의 나는
젊은 시절 날렵했던 나에게선 상상할 수 없던
수북한 뱃살에 훨씬 관대해졌다.
누군가는 게으른 탓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나의 나른한 뱃살에 제법 만족한다.
우리집에서 뱃살하면
예전에는 딸꾹이었는데
지금은 딸콩이다.
나른한 햇살 아래
뱃살을 제 맘대로 까제끼고 드러누운
딸콩이는 천하태평이다.
천하를 태평케 하는 데에는
나른한 뱃살과
나른한 햇살만으로도
충분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