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하던 브런치북이 아닌 데에 업로드하는 바람에 다시 올립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 말은 배우 이서진 씨의 말이다.
2000년대 초
드라마 <다모>에서의 대사다.
지금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츤데레 아저씨로 웃기고 있어
저 대사의 저릿한 맛이
전혀 상상이 안 되겠지만
좌포청 종사관과 천민 신분의 다모 사이
얽히고 설켜 넘을 수 없는 벽 너머
반대편에서 전하는 울림의 마음짓이었다.
마음을 전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늘 오해하고 왜곡하고
내 말이 맞네
니 말이 맞네
말이 엉키고 마음도 꼬인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작은 손짓 하나로
떨리는 짧은 한마디로
따스한 눈물 한 방울로
풀리기도 한다.
예전에는 사람 마음만 생각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미물들 마음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 딸구들과의 세월 속에
이제는 그런 생각을 부끄러워 하게 되었다.
작은 냥이들도
기뻐하고
화내고
아파하고
좋아한다.
눈치보고
두려워하고
용기내고
우쭐한다.
작은 아이들이라고
그 마음까지
하찮고
작은 건 아니다.
우리보다
조금 단순할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진솔하고
더 꾸밈없고
더 담백하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
녀석들의 담백함은
우리의 처지와 상관없이
우리를 언제나 환대한다.
속과 겉이 모두 거짓없는
녀석들의 진솔함은
때론 우리를 미소짓게 하지만
때론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우리 딸구네에서 겪은
녀석들의 마음짓 한가지 말해보련다.
딸콩이, 딸님이를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뒤의 일이다.
딸콩이, 딸님이는 쌍둥이 자매답게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만큼
살갑게 서로 위해 주고
꼭 붙어 있곤 했다.
반면, 딸랑이는
지가 본래 관상냥이로 까칠한데다
아직 합사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탓인지
쌍둥이 자매와 아주 친해 보이지는 않았다.
가끔 위계질서 잡는다고
콩이, 님이를 드잡이하기도 하고
쌍둥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우다다 폭주로 기를 죽이기도 하던 터라
딸랑이와 쌍둥이 자매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여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딸랑이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딸콩이, 딸님이를 입양한 후
몇 달 있다가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혹시 딸랑이가
수술 후 지친 쌍둥이 자매에게
평소처럼 달려들거나
과격하게 행동하면 어떡하지
바싹 긴장하였다.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회복하는 냥이들이지만
수술 후 하루 정도는
꼼짝없이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했다.
병원에서 돌아와
콩이와 님이를 실은 케이지를
거실 안으로 들고오는 순간
되려 딸랑이가 움찔하였다.
그리고는 안 보이는 데로
자기 몸을 숨겼다.
밖에서 병원 냄새 묻히고 와서
그런 건가?
아픈 몸을 추스르며
콩이는 소파에 앉은 엄마 무릎 위에
님이는 건너 흔들의자에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해
많이 힘든 듯 쓰러졌다.
우리 부부는
쌍둥이 자매가 쉬는 동안
혹시 모를 사태를 염려하며
딸랑이를 예의 주시했다.
.
.
.
그렇게 잠깐의 고요가 흐른 뒤
딸랑이가 스윽 나타났다.
어찌보면 긴장한 듯
어찌보면 경계하는 듯
살곰살곰
딸님이 쪽으로 걸어가서는
물끄러미 딸님이를 바라보았다.
뭐하는 거지?
그러더니
조심조심
이번에는 딸콩이 쪽으로 걸어와서는
딸콩이를 바라보았다.
아....!!!
잔뜩 경계하던 아내와 나는
딸콩이를 바라보는
딸랑이의 눈빛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딸랑이와
딸콩이, 딸님이 쌍둥이 자매는
서로
티격태격
우당쿵쾅
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속마음은 이런 건가?
딸구들은
작은 아이들이지만
그 마음까지
하찮고
작은 건 아니었다.
그날부터 얼마간까지
딸랑이는 콩이 님이 자매를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2~3일 후에야
몸이 회복된 딸콩이, 딸님이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 다시
딸랑이와 함께
우당쿵쾅 하며 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