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던 때
시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산 적이 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도
함께 숨쉬는 것을 의심해야 했던
그 시절을 뭐라고 해야 할까?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불편함과 불안감은
보통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어떤 일에선
이렇게 거리두기를 해도 되는 거였구나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하였다.
그 많던 회의가 줄고
그 회의들이 없어도
다 잘 살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코로나의 순기능이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거리두기를 배웠지만
냥이들은 태생적으로
거리를 두는 존재들이다.
처음 냥이들과의 동거에서
녀석들의 거리두기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강아지를 길러본
경험에 비추어보면
녀석들의 거리두기는
야속했다.
쌀쌀맞았다.
이기적이었다.
제멋대로였다.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익숙함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변한 걸까?
어느 순간
녀석들의 거리두기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은 야속한 게 아니다
살가운 것만 반가운 건 아니야
녀석들은 쌀쌀맞은 게 아니다.
내 기분도 중요해
녀석들은 이기적인 게 아니다.
개인적인 게 이기적인 건 아니야
녀석들은 제멋대로가 아니다.
난 좀 독립적일 뿐이야
녀석들은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니다.
난 네 종이 아니잖아
때때로 친한 이에게 무례를 범해
마음을 상하게 할 때가 있다.
그건 거리 없이
선을 넘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해도
함부로 간섭하려 말고
멋대로 지배하려 말고
그렇게 둘이
적당히 가깝게
적당히 떨어져 있기
아무리 가까와도
너를 넘지 않고
나를 넘지 않는
둘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지만 둘인
사이
나와 당신에게도
그런 ‘사이’를 둔다.
같은 소파에 앉는 것도 용한 딸랑이. 비록 저만치 떨어져 앉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