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냥이만큼 좋은 곳을 잘 찾는
녀석들도 없을 게다.
해외 어느 나라에선
새 집에 들게 되면
먼저 냥이를 풀어놓는단다.
냥이가 떡하니 자리잡은
그곳을 안방으로 삼으려고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딸구들도
따뜻하고 안락한 곳을 잘 찾는다.
날이 서늘해지는 밤이면
어김없이
딸랑이는 내 가랑이 사이로
딸콩이, 딸님이는 엄마 겨드랑이와 목덜미 사이로
파고든다.
어떤 때는 화장실 한 켠에
배를 착 붙이고 있다.
그 밑으로 배관이 지나는지
틀림없이 고 부분만 유독 따뜻하다.
귀신같은 놈들...
그러나
나는
좋은 곳을 잘 찾는 녀석들보다
좋은 때를 잘 누리는 녀석들이
신비롭다.
바쁘고 분주한
나와 달리
나른하고 한가한
녀석들은
시간을 쫓는 게 아니라
시간이 따라오게 한다.
햇살 따뜻한 베란다에 누워
늘어진 녀석들은
틀림없이
시간도 늘어지게 한다.
청설모 꼬리를 하고는
온 사방으로 우다다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게 전부인 것처럼
시간을 멈추게 한다.
우리의 시간은
정신없이 앞으로 가고
벤쟈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지만
고양이의 시간은
늘 현재를 붙들고 있는 것만 같다.
가끔은
나도
녀석들의 시간 속에
살고 싶다.
성경의 첫 책 <창세기>를 보면
신이 세계와 만물을 창조한다.
이때 카도쉬(거룩하다)라는 말로
축복한 유일한 것이 있다.
바로 7일째 되는 “날”이다.
예수님도
신에게 참으로 예배할 “곳"을 묻는 여인에게
여기도 말고
저기도 말고
"바로 지금"
가장 깊고 내밀한 진심으로
신을 찾는 사람이 신을 만난다고 했다.
공간이 아닌
시간이야말로
거룩한
신의 것이다.
공간적인 것은
점유하고 자리 잡는다.
거기에 매달리고 붙잡힌다.
그러나
시간적인 것은
머무르지 않기에
붙잡을 수 없다.
사람은 마치 바벨탑을 세우듯이
공간적인 것을
소유하고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세우려 한다.
그러나 우리 삶은
어디에 사느냐보다
언제에 사느냐가
보다 거룩하다.
차지할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는
시간의 진리는
신이 거룩하게 하신
우리 삶의 '날'들을
어떻게 살아아 할지 말해준다.
가끔은 나도
냥이들처럼
시간에 안기고 싶다.
지금 하는 일이
전부인 것처럼
진심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 지금을 보내고 싶다.
곤히 잠든 딸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