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홀로였다.
고요한 집에서
딸기만이
내 혼잣말을 들어주는 청자였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냥냥대는 화자였다.
그래도
우리 둘은
친구였다.
딸기는 대개
한적한 시간과 공간에
조용히 머물렀다.
그렇게 조용히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가끔은
내가 하는 일에
주변을 맴돌며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앉아있는 내 곁에 같이 앉거나
잠시 누울 때면 내 배 위에 누워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또 가끔은
조용함을 깨고
요란을 떠는 것도
이 작은 친구의 몫이었다.
나의 장난을 받아주기도 하고
혼자 신나서 우다다거리며
내 생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당시 초보집사였던 내게
이 작은 친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소란은
아파트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우리집 딸구네 계보에서
집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아이는
딸기가 유일했다.
어떻게 그랬나 싶지만
녀석은 집밖으로 나가
문을 열어둔 옆집, 아랫집에도 불쑥 들어가고
아파트 위쪽 옥상으로 내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때마다
녀석을 잘 챙겨서 데려오기도 하고
녀석이 스스로 알아서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나갔다 길을 잃을까봐
어찌되었든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애쓰곤 했다.
그날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하루였다.
평소와 다름 없이
남편이 출근한 뒤
조용한 집안에
딸기와 나
둘뿐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녁 무렵
내가 잠시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잠잠하던 딸기가
갑자기 후다닥
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딸기야~!!
얼른 뒤쫓아갔다.
오늘은 옥상 방향이었다.
허겁지겁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집안에서는 미처 몰랐는데
옥상 위와 아파트 주변
옥상 위에서 뵈는 저 먼 산까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내가 막 올라선
옥상 문 앞에서 저 멀리까지
깨끗한 하얀 위에
은빛 발자욱만이 한 줄 남아있었고
그 끝에 딸기가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석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눈이 그쳐 갠 하늘은
깨끗한 파란이었고
비스듬히 깔리는 어둠 사이로
하얀 위에 비치는 하늘이
푸른 빛깔을 서리게 했다.
파란 흰 속에
딸기의 검은만이
상서롭게 눈에 밟혔다.
신비한 기운에 사로잡힌 듯
꼼짝하지 못하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파란 흰 속에 검은
딸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
...
...
딸기는 늘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아이
하늘이 주신 아이였다.
그날은 딸기가 그런 아이임을
새삼 알려주는 듯했다.
*** 이 편은 아내의 추억을 듣고 대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