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파란 흰 속에 검은

by 나른한 뱃살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홀로였다.


고요한 집에서

딸기만이

내 혼잣말을 들어주는 청자였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냥냥대는 화자였다.

그래도

우리 둘은

친구였다.


딸기는 대개

한적한 시간과 공간에

조용히 머물렀다.

그렇게 조용히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가끔은

내가 하는 일에

주변을 맴돌며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앉아있는 내 곁에 같이 앉거나

잠시 누울 때면 내 배 위에 누워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또 가끔은

조용함을 깨고

요란을 떠는 것도

이 작은 친구의 몫이었다.

나의 장난을 받아주기도 하고

혼자 신나서 우다다거리며

내 생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다.


당시 초보집사였던 내게

이 작은 친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소란은

아파트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우리집 딸구네 계보에서

집 밖에 나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아이는

딸기가 유일했다.

어떻게 그랬나 싶지만


녀석은 집밖으로 나가

문을 열어둔 옆집, 아랫집에도 불쑥 들어가고

아파트 위쪽 옥상으로 내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그때마다

녀석을 잘 챙겨서 데려오기도 하고

녀석이 스스로 알아서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나갔다 길을 잃을까봐

어찌되었든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애쓰곤 했다.


tempImageE4SrfI.heic 엄마 품에서 졸고 있는 딸기


그날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하루였다.

평소와 다름 없이

남편이 출근한 뒤

조용한 집안에

딸기와 나

둘뿐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녁 무렵

내가 잠시 아파트 문을 열었을 때

잠잠하던 딸기가

갑자기 후다닥

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딸기야~!!

얼른 뒤쫓아갔다.

오늘은 옥상 방향이었다.

허겁지겁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집안에서는 미처 몰랐는데

옥상 위와 아파트 주변

옥상 위에서 뵈는 저 먼 산까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내가 막 올라선

옥상 문 앞에서 저 멀리까지

깨끗한 하얀 위에

은빛 발자욱만이 한 줄 남아있었고

그 끝에 딸기가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석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눈이 그쳐 갠 하늘은

깨끗한 파란이었고

비스듬히 깔리는 어둠 사이로

하얀 위에 비치는 하늘이

푸른 빛깔을 서리게 했다.


파란 흰 속에

딸기의 검은만이

상서롭게 눈에 밟혔다.


신비한 기운에 사로잡힌 듯

꼼짝하지 못하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파란 흰 속에 검은

딸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

...

...

딸기는 늘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아이

하늘이 주신 아이였다.

그날은 딸기가 그런 아이임을

새삼 알려주는 듯했다.



AI가 재연해준 그날의 분위기





*** 이 편은 아내의 추억을 듣고 대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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