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난 너희 나른함을 사랑해

by 나른한 뱃살
나른하신 딸랑님과 딸콩님


한병철씨의 말을 빌자면

현대사회는 ‘피로사회’다.

우리 사회가 피로한 이유는

성과지향적으로 채근하기 때문이다.

더 높게, 더 앞서, 더 빠르게 발전하고

그런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게

자기를 닦달해야 하는 삶은

피로하지 않을 수 없다.


피로사회 속 한 가운데에 있다가

딸구네에 돌아오면

갑자기 앞만 보고 내달리던

발걸음이 주춤한다.


24시간 중에 20시간 정도는,

그러므로 ‘언제나’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늘 심드렁하게 드러누워있는

딸구들을 마주하게 되면

이 녀석들은 뭐지 싶다.


들고 나는 가슴만 보일만큼 고요한

온 몸에 힘을 빼고 누워 느슨한

이것저것 바쁜 세상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심한

나는 녀석들의 그런 나른함을 사랑한다.


열심히 내달리느라 놓쳤던 정신줄이 잡힌다.

앞다투느라 힘썼던 온 몸의 맥이 풀린다.

애쓰느라 달아올랐던 후끈한 열기가 식는다.


말랑말랑 풀어져있는

딸랑이를 쓰다듬고 조물락거린다.

녀석이 귀찮아한다.

너무 좋아 너무 좋아 하고 계속 들이대면

쌩하고 다른 데로 숨어든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나른함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그래도 좋다.

만질 수는 없지만

다시 고쳐 누운 녀석을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보들보들해지고

입꼬리는 헐거워진다.


가끔 관대한 딸콩이는

그래 만져 봐라 하고

대뜸 배를 까고는 드러누워준다.

이게 왠 떡이냐 싶어 마냥 기분좋게 매만진다.


나도 말랑말랑해진다.

나른해진다.

너희 흘러내린 몸처럼

나도 흘러내린다.


그래서 난 너희의 나른함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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