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 모델과 as a Service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고객 니즈
오늘은 새 면도날로 교체하는 날입니다
필자는 면도기를 구독한다. 남들의 배로 자라나는 턱수염 때문에 매일 면도가 필요하기에 몇 년 전부터 비싼 질레트 면도기 대신 BIC 면도기를 구독해 사용 중이다. 한 달에 만원 가량 지불하고 사용한 후기는 '매우 만족 별 다섯 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귀찮은 것들 신경 안 쓰고 아침에 그냥 면도만 할 수 있어서'.
면도기 구독 이후로는 마트에 갈 때마다 혹시나 질레트 면도기를 할인했을까 면도기 코너를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할인 행사한다고 몇 달치 면도날을 잔뜩 사서 쟁여놓지 않아도 되며, 면도날을 지금 갈아야 하는지 며칠을 더 써도 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매달 보내주는 면도날 4개를 매주 1개씩 갈아 끼면 된다.
80년대에 신문에서 시작된, 생각보다 매우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인 구독 모델은 최근 거의 모든 사업에서 활용하는 모델이다. 구독의 대상은 면도기, 양말 같은 생필품을 넘어 꽃, 술, 심지어는 예술품까지 확대되고 있다. 단순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로까지 확대된 구독 모델은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에 접목되어 이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에게 매달 혹은 매주 정기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그런데 '귀찮은 것들 신경 안 쓰고 그냥 필요한 것만 할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또 있다. 구독 모델이 B2C 업체들에게 확대되고 있다면, 이 모델은 B2B에서 좀 더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독 모델만큼 다양한 디지털 재화에 접목해서 쓰이고 있는 'as a Service, XaaS' 모델이다.
그냥 접속해서 필요한 만큼 써,
Everything as a Service
클라우드의 대표적 서비스 모델인 as a Service 모델은 서버 운영에 필요한 모든 재화들을 클라우드에서 빌려 쓰고 쓴 만큼의 비용만 지불하는 서비스 모델이다. 애초에 클라우드가 '대용량 스토리지와 연산능력이 갖춰진 서버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가상의 네트워크 컴퓨팅 환경을 제공한다’는 개념이었기에 as a Service 모델은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에 최적으로 맞춰진 서비스 모델이다.
하지만 클라우드만 빌려 쓰던 기업 고객들이 점차 다양한 것들을 빌려 쓰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의 활용도가 늘어남에 따라 인공지능(AI) 솔루션을 클라우드에서 사용하는 'AIaaS, AI as a Service'도 있으며, 최근 금융권에서는 은행의 각종 기능들을 서비스화해서 사용하게 해주는 'BaaS, Banking as a Service'도 생겨났다. BaaS는 이미 해외에서는 활발하게 서비스되고 있을 만큼 as a Service 모델은 이제 클라우드를 넘어 산업 전반의 서비스 모델로 확대되고 있다.
as a Service가 여러 산업의 서비스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구독 모델과 같다. 기업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때 AI도 활용하고 싶고, 뱅킹 서비스도 붙이고 싶지만 직접 구축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데, '이런 귀찮은 것들 신경 안 쓰고 필요한 서비스만 쓸 수 있어서'이다. 기업 고객들은 클라우드를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쓴 만큼의 비용만 지불했듯, AI나 뱅킹 서비스도 필요한 기능만 쓰고 그만큼의 비용만 지불하고 싶은 것이다.
고객들이 이러한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 서비스 모델을 점점 더 많이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이 글의 제목과 같다. Just Use It. 별다른 준비 없이 그냥 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Just Use It! 그냥 쓰기만 할래!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효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최근 소비의 트렌드가 '가성비'에 포커싱 한 것은 효율이라는 키워드가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생활에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과거의 효율은 투입되는 비용 대비 성능(혹은 만족)의 관점이 컸다면, 현재의 효율은 투입되는 시간까지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저가 구매도 좋지만 최저가 선택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면 최저가가 아니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저가 제품을 구매하고 남은 시간을 즐기겠다는 셈이다.
이러한 특징들이 Just Use It으로 대표되는 구독 모델과 as a Service 모델의 수요로 나타나고 있다. 필요한 상품의 최신 버전을 적은 비용으로 매달 제공 받음으로써 구매를 위해 소요하는 시간을 아낀 후 그 시간을 자기 계발, 힐링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기업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인프라 서비스를 사용한 만큼 지불함으로써 최신 기술과 제도가 반영된 인프라 서비스를 제공받고, 구축과 운영에 소모되는 시간을 아낀 후 그 시간을 자사 서비스의 품질 향상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델들의 수요가 앞으로 지속될까? 필자는 이러한 사용자 중심의 모델이 시장의 지배력을 넓히는 것을 넘어, 지금보다 더욱더 '그냥 쓰기만 하면 되는' 니즈에 부합하도록 진화할 것이라고 본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진화할 것으로 본다. 1) 사용자의 구매 자유도(선택권)를 높이는 방향과 이에 맞추어 2) 비용 청구가 세분화되는 방향이다.
1) 구매 자유도(선택권)의 증가
- 면도기를 쓰다 보니 쉐이빙 젤도 좋아 보이네, 이것도 매달 보내줄래?
사용자들은 지금보다 구독 모델의 선택권과 as a Service의 서비스 선택권에 있어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매달 똑같은 제품을 받아보다 보면 좀 더 다양한 니즈가 발현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수요들은 제품을 좀 더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진화할 것이다. 필자는 면도기를 구독하고 있으니 이쪽으로 예시를 들어보겠다.
필자는 현재 면도기 날만 매달 받고 있으나 실제로는 구독하는 곳의 쉐이빙 젤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쉐이빙 젤은 별도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떨어질 때쯤 다시 구매하면 되지만, 사실 필자는 최근에 바빠져서 이것 마저도 번거롭다. 쉐이빙 젤 사용에 대략 2달 정도 소요되니, 면도기 구독에 쉐이빙 젤 기능을 추가해서 격월로 같이 구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니즈가 생긴 것이다.
면도기를 예시로 들었지만 아마 면도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독 제품에서 고객들은 필자와 같은 추가 니즈들이 생겨날 것이다. 구독 모델을 제공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니즈를 캐치하고 대응하는 것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될 것이며, 나아가 고객을 락인하는 요소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고객들은 제품 하나를 구독하다가 끊는 것보다 둘, 셋을 구독하다가 끊을 때 더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2) 세분화되는 비용 지불
- 구글 드라이브 100GB에 1.99달러네, 지금 50GB도 안 쓰는데 0.99달러에 50GB만 쓰면 안 될까?
사용자들의 제품 구독에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레 고객의 성향과 니즈 별로 구독하는 형태가 다양해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응할 수 있는 과금 방식은 세부 서비스 혹은 개별 단위의 구독 제품 별로 과금을 지불하는 형태일 것이다. 또한 as a service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나타날 수 있는데, 필자는 구글 드라이브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같은 맥락으로 예시를 들어보겠다.
필자는 현재 구글 드라이브 basic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1.99달러에 100GB를 사용하는 구독 모델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 그만큼의 용량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필자의 구글 드라이브 사용 용량은 40GB 정도. 구독 비용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사실 절반도 안 쓰는 100GB 구독 비용을 내는 건 조금 아깝다. 세분화돼서 비용을 청구하고 지불할 수는 없을지에 대한 니즈가 생긴 것이다.
예시처럼 세분화된 과금 방식은 제품보다 오히려 서비스에 더 특화될 수 있다. 개수의 단위로 떨어지는 제품이 아니라 더욱 세분화가 가능한 시간 혹은 이용량 등으로 측정되는 서비스야 말로 이러한 세분화된 비용 지불 방식을 적용하기 적합한 재화인 셈이다. 이러한 과금 방식은 고객에게 진짜로 내가 쓴 만큼만 비용을 지불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어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으며, 디테일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타사의 구독 모델과 대조되어 서비스 외적인 또 다른 차별점이 될 수 있다.
Just For You, Just Use It.
사용자 중심 모델에 해당되는 구독 모델과 as a Service도 결국은 고객이 서비스 혹은 제품을 사용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사실 이러한 방식들은 서비스 혹은 제품이라는 본질을 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결국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이를 사용하는 고객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구독 모델과 as a Service 모델이 꾸준히 활용될지, 또 다른 모델이 나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고객이라고 불리는 사용자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확대될 것이기에, 꾸준히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필자는 구독 모델과 as a Service를 사용하는 고객들을 이해해보려 했고, 이를 통해 그저 사용만 하고 싶은(Just Use It) 고객 니즈가 있다는 것을 도출하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러한 고객들의 행동에서 어떠한 니즈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이 기회에 자신만의 답을 찾아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