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빠진 어린양을 구하면 추가 점수 100점!~
한국에서 '사이비'라 불리는 종교가 맺어준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부모님 못지않게 대단한 집념을 가진 종교인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기독교는 한국에서 제일 많은 신자 수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부모님의 교회와 상당 부분 같은 교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엮이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엮일 일이 잦았다. 오늘은 내 삶을 스쳐 지나간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금도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1:1 멘토링 학습을 지원하는 지자체 프로그램이 있었다. 맞벌이로 넉넉지 않았던 가정 형편상, 내게 따로 과외를 붙여줄 수 없었던 부모님은 담임선생님께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ㄱ곧바로 내게 멘토 선생님을 붙여주었다.
당시 내게 배정된 멘토링 선생님은 누가 봐도 선하고 좋은 인상의 교대생이자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담당하는 아이들이 많아 늘 거리감이 있던 담임선생님과는 달리 옆집 언니처럼 미주알고주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근한 선생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우리 집 안방에서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참부모님'(엄마가 다니는 교회의 교주 부부 내외)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내게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묘한 도전의식을 느꼈던 것인지, 그날 이후 선생님은 종종 수업시간에 본인의 교회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 한번 가게 되면 매주 가야 하게 될까 봐 대답을 어물쩍거리던 나는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이 얼마 남지 않았던 6월의 어느 일요일에 선생님의 교회를 찾았다.
교회의 느낌은 엄마가 다니는 교회와 비슷했다. 2층짜리 상가 건물을 개조해서 교회로 쓰고 있는 점에서나, 협소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인원이 앉을 수 있도록 장판을 깔아 두어 은은하게 가정집 느낌이 나는 점이 그랬다. 그날은 어린이 예배가 끝난 시간이라서 어른 예배를 선생님과 함께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날의 예배 주제가 공교롭게도 ‘이단 종교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설마, 하는 마음이 역시 나로 바뀌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목사님은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꽤나 많은 지분을 할애해서 설교하셨다. 그런데 상당 부분이 내가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와 달랐다. 그 교회에서는 교주가 목이 잘려도 살 수 있다고 얘기한다는 둥, 교주는 물론이고 교인들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둥 목사님은 냉전시기에 북한 사람들을 뿔과 꼬리가 달린 빨간 괴물로 묘사하는 방식과 흡사한 방식으로 거침없이 엄마가 다니는 교회를 비난하는 이야기만 늘어놓으셨다. 요지는 경각심을 가지라는 것일 테지만, 상당수의 이야기들이 나는 들어보지도 못한 괴상하고 황당한 얘기들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주는 점심을 먹으며 선생님은 앞으로도 교회에 나오고 싶으면 매주 본인이 교회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막상 면전에서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얘길 들으니 그럴 마음이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사다난했던 타 교회 탐방일 이후로 멘토 선생님과 만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학년이 오르고, 나는 신실함을 넘어선 독실한 크리스천 담임 선생님을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육십 대 정도 되시는, 할머니와 손주만큼 세대차이가 나는 선생님과의 만남이었다. 숙으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그 선생님은 정규 수업시간에도 서슴지 않고 성경 이야기를 하셨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 오전 수업 시간 전부를 할애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육 개월 전에 새로 이사 온 이웃집 가족도 대문에 감로교회 스티커가 붙은 것으로 보아 꽤 신앙심이 깊으리라 짐작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에 떡을 돌리러 와서는 다니는 교회의 팸플릿을 함께 건넸다고 했다. 엄마는 팸플릿을 감사히 받고는, 안방 한편에 수북이 쌓아둔 한학자 총재(현재 교주)의 자서전을 이웃에게 건넸다.
떨떠름한 미소로 책을 받아 들고 돌아선 이웃의 소식은 그날 이후 잠잠하다. 때로는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구제불능의 대상이 되는 것이 편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수없이 스쳐지나간 그들에게 우리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교화의 대상, 내지는 설득할 가치가 없이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엄마가 다니는 교회 기준으로 ‘잘못된 길’을 한참 걸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그 길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내 발에 딱 맞는 길이라는 걸 안다. 내게 소원이 있다면, 모든 종교인의 '구원 대상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말끔히 지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신께서 이 세상의 모든 착한 종교인들을 다 챙기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부디 나처럼 ‘잘못된 길’을 한결같이 고수해 온 사람들과 그 길 끝에서 만나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럼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