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할아버지, 저한테 왜 그러세요?(2)

~때로는 이 좋은 걸 나만 알아도 된다~

by 나쵸

호기심도 있었고 아빠에게 효도하는 셈치고 방학 기간 동안 고모네 센터에 집중적으로 다녔던 나는 고모의 지도 하에 이런저런 트레이닝을 받았다. 108배를 하기도 했고 미친듯이 춤을 추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명상을 했다. 생각해보면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이곳저곳에서 좋다고 하는 수련법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 같다. 가끔가다 유튜브에서 그 수련법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날 때도 있고 실제로 그걸 하는 동안 마음이 개운함을 느낄 때도 있었으니까.


수련이 거듭될 수록 마음의 묵은 때가 벗겨지고 있다고 믿었다. 사춘기를 지나며 서먹해졌었던 고모와의 관계도 가깝게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족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예쁜고모에게 속얘기를 털어놓으면서 일어났다. 내가 ‘어쩌면 제 불안의 근원에는 아빠의 알콜중독과 불안정한 양육 환경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하고 막연하게 던진 얘기를 예쁜 고모는 아빠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좀 더 특별하고 중장기적인 세션이 필요하다며 수 천만원에 달하는 프로그램을 아빠에게 권유했다. 아빠는 내가 원한다면, 그리고 꼭 필요하다면 그 돈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혹스러움을 넘어 수치심과 모멸감,분노라는 감정의 3종 세트를 한 순간에 선물받은 나는 곧장 캐리어에 짐을 싸서 서울에 있는 다른 친척집으로 은신했다. 더 이상 수련을 받고 싶지 않다는 구구절절한 장문의 카톡을 끝으로 예쁜 고모와의 인연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 에피소드가 내가 쓰는 소설이었다면 이렇게 이야기는 끝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두 번 다시 고모를 보는 일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아빠에게 예쁜고모는 조카를 아끼는 마음이 과했을 뿐인 어린 여동생일 뿐이었다. 아직도 예쁜고모는 매년 명절, 제사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우리집의 귀한 손님으로 방문하고 계신다.


최근에는 아빠의 건강검진 결과가 나쁘게 나왔다며 ‘ㄷ세상’에서 암도 치유할 수 있다며 최근 밀고 있는 신소재 건강기능식품과 의료(온열)기기를 다른 형제들의 돈을 각출해서 우리집에 들고 왔다. 이 제품들이 과연 아빠에게 어떤 효능이 있을지 모르겠다. 클렌징 주스와 온열 찜질기로 나을 병이라면 운동과 절주로도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닐까?


예쁜 고모가 몸 담고 있는 종교(*본인들은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단군의 건국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애꿏은 단군 할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믿음만 있으면, 스스로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반추는 생략해도 되는 것일까?


모두에게 똑같이 이로운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나는 단군할아버지에게 외치고 싶다.


“단군 할아버지! 저한테 왜 그러세요? 저 좀 내버려두세요!“

화요일 연재
이전 06화40일의 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