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에그

~우연일까, 복선일까?~

by 나쵸

이스터에그: 콘텐츠 속에 의도적으로 숨겨둔 메시지나 이미지, 기능을 뜻하는 말


삶이 트루먼쇼 같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별 볼 일 없는 내 삶을 구태여 보고 싶어 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가끔은 누군가 내 삶에 기밀하게 설치해 놓은 이스터에그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 나를 의심하게 만들 때가 있다.


열두 살 무렵, 옆 반에 미화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다. 같은 반 친구는 아니었지만 한 학년이 모두 참여하는 체험활동 시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은 이준기 배우가 나오는 ‘일지매’라는 드라마를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찬 공기가 가을바람에 섞여든 어느 날, 소위 말하는 베프가 된 우리는 겨울방학 안내문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미화에게 겨울방학에 뭘 하고 놀 거냐고 물었고 미화는 일본에서 이모와 사촌동생들이 놀러 와서 그들과 시간을 보낼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너네 이모 일본 사람이랑 결혼했어?” 하며 놀라서 물었다. 미화는 별스럽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학교에 엄마가 외국인인 아이가 나 밖에 없던 때였다. 더군다나 일본에 건너가서 결혼을 했다고 하니 기시감을 느낀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두 분이 어디에서 만났냐고 물었다.


- 교회에서 만났다던데?


낭랑한 목소리로 되돌아온 미화의 대답. 알고 보니 미화에게는 일본으로 시집을 간 이모 외에도 또 한 명의 이모와 두 명의 삼촌이 더 있었고 모두 우리 엄마와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막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나는 그 어떤 종교에도 발길을 끊은 지 오래였던 지라 종교와는 더 이상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아예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새내기의 최대 관심사는 오로지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어떻게든 외롭지 않은 캠퍼스 라이프를 보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인간관계를 맺는 게 서툴렀던 20대 초반의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수월하지 않았다. 초중고 시절에는 한 반에서 꼼짝없이 같이 수업을 듣고,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알고 싶지 않아도 같은 반 친구가 누굴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쯤은 저절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교는 달랐다.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표를 짤 수 있었고 휴학이나 편입도 잦았기에 같은 학년에 누가 남아 있는지 모르고 종강을 맞는 일도 많았다. 내향형에다 음주가무를 일절 하지 않는 나는 동기들과 사교할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놓쳐버렸다. (과연 친구를 사귈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동기들은 그 사이, 서로 시간을 맞춰서 수강신청을 했고 공강 시간에는 학과사무실이나 동아리방에 삼삼오오 모여 그들만의 우정을 돈독히 쌓아갔다.


그런 내게도 친구가 생기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학과 수업 시간마다 나처럼 묘하게 겉도는 친구 한 명과 같은 조가 되어 조별과제를 했던 게 계기가 되었다. 이 친구가 매번 학식을 혼자 먹는 모습을 몇 번 봤던 터라 어느 날은 과제를 하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앞으로 나랑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우리는 그날 이후부터 외롭지 않은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말수가 별로 없는 그 친구의 이름은 유정이었다. 유정이는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도통 자신의 얘기를 꺼내지 않는 친구였다. 그만큼 친해지는 데에 한계는 있었지만 같이 다닐 친구가 있다는 게 어딘가 싶었다.


하루는 둘이서 카페에서 시험공부를 하다 유정이의 노트북 배경화면을 보게 되었다. 오사카로 추정되는 곳에서 가족들과 찍은 친구의 사진이었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우리 사이의 침묵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느낌에 언제 일본 여행을 다녀왔냐고 물었다.


- 여행은 아니고 작년에 외갓집 다녀왔을 때 찍었어.


‘외갓집’과 ‘일본’이라는 단어에 7년 전에 느꼈던 감정이 소환됐다. 아니나 다를까 유정이도 나처럼 일본인 어머니를 둔 축복가정 2세였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 내가 자발적으로 발굴한 이 만남의 시발점이 같다는 것이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립 대학교라 장학금이 절실했던 나는 양민학살이라는 비난도 감수하고 일본어 회화 초급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교안을 나눠주시는 원어민 교수님이 끼신 반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반지에 그려진 심볼이 묘하게 눈에 익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원어민 교수님을 3개월 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유정이에게 원어민 교수님이 부모님이랑 같은 교회 사람인 것 같다는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 나 그 교수님이랑 매주 같이 예배 보는데?


그 후에도 내 삶에서는 원치 않는 교회 사람과의 만남이 예상도 못한 타이밍에서 펼쳐졌다. 등장인물의 역할은 항상 달랐다. 첫 회사의 직장 상사이기도 했고, 유학시절에 만난 기숙사 친구이기도, 남자친구이기도 했다. 그들이 다니는 교회의 이름은 때때로 달랐지만 한국에서 사이비로 분류되는 건 같았다.


이상하다, 난 분명히 교회를 떠났는데.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 하지만 지금껏 마치 누군가가 내 삶에 정교하게 심어둔 장치처럼, 삶의 길목에서 의도치 않게 교회사람들과 마주쳐야 했다. 과연 이 모든 걸 그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잘 짜인 한 편의 영화 속 복선 같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깨달아야 할 건 무엇이며, 아직 찾지 못한 이스터에그는 몇 개나 남아있는 걸까.


어쩌면 제목이 사이비인 영화의 주인공이 나일 수도 있겠다. 흥행은 고사하고 99% 확률로 더럽게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긴 러닝타임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나는 기필코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꼭 감독 놈의 이름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리라. 혹시 영화가 끝나고 GV까지 이어진다면 감독은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다. GV빌런의 신랄하고 끝없는 질문들을.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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