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태 신앙을 어떻게 버리게 되었나~
이제와 새삼 놀라울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모태신앙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두 사람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본인들의 종교관을 심어주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리라. 지금은 종교를 막론하고 신과 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심드렁해지는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내게도 신앙이라고 불릴 만한 게 있었던 시기가 확실하게 존재했다.
책가방 안쪽 주머니에 ‘참부모님’으로 일컫는 두 교주 부부의 사진을 소중히 넣고 다녔던 초등학교 3학년 때의 나를 기억한다. 그때는 온갖 불안한 일과 간절한 일 앞에서 하느님과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참부모님‘을 찾았다. 심지어 친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바람에 난생처음 롤러코스터에 올라 미칠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던 그 순간까지도. 온 마음을 다해 그 두 사람에게 나의 안녕과 무사 귀환을 빌었으니 꽤나 정신적으로 큰 의지처였음이 분명하다.
교회에서는 여름방학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어린이와 청소년을 데리고 1박 2일 혹은 2박 3일 수련회를 열어 2세들의 신앙생활을 독려했다. 그 수련회에 참가하는 동안에는 한 명도 빠짐없이 파스텔 블루 컬러의 반팔을 입어야 했다. 티셔츠 정중앙에는 교회의 로고가 크게 프린팅 되어있고 그 위에는 ‘one family under god‘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매년 근교에 있는 교회 건물을 빌려 그곳에서 합숙을 하다 돌아오는 게 여름 수련회의 루틴이라면 루틴이었는데, 그 해에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우리 지역 교회 지부에서 계곡 근처에 있는 한 건물을 통째로 빌렸다. 제법 야영을 온 느낌도 있었고 밤에는 담력 시험 같은 재미있는 콘텐츠까지 마련해 줘서 큰맘 먹고 올해는 역대급 수련회였다며 일기장 두 페이지에 걸쳐 극찬할 용의도 있었다.
수련회의 마지막 날, 저녁엔 모두가 살짝 지쳐있었고 오랜 물놀이로 굶주려 있던 나는 교회에서 친 천막 아래에서 동그란 접시를 들고 맛있는 바비큐 배식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햇볕에 그을린 샌들자국이 그대로 남은 발등에 대해서 얘기하던 엄마와 나는 앞쪽에서 웅성대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중학생으로 정도로 추정되는 남학생 두 명이 꾸중을 듣고 있었다. 나에겐 늘 친절하기만 했던 주일학교 선생님의 고성이 들렸다. 꾸중의 이유는 ‘교회 사람도 아니면서 여기서 배식을 받으려고 해서’였다. 그날 나는 뜨거운 숯불의 열기 속에서 붉게 달아오른 두 남학생의 귓불을 보았다.
그 해를 마지막으로 수련회에 가지는 않았지만 습관처럼 주일날은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다. 피아노를 전공하신 교회 식구분에게 개인 레슨도 매주 받으러 다녔다. 수업용 업라이트 피아노로 겨우 체르니 100번을 치던 나는 예배실에 있는 큰 그랜드 피아노를 볼 때마다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몇 개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늘어나는 건 그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욕심뿐이었다. 하루는 레슨이 시작하기 삼십 분 일찍 교회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그랜드 피아노를 쳐볼 심산이었다.
검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윤기가 반질거리는 그랜드 피아노를 십 오초 남짓 쳤을까, 예배실의 문이 열리고 예의 그 주일학교 선생님이 사나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다가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하느님한테 예배드릴 때 쓰는 신성한 피아노를 왜 치려고 하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작아진 어깨로 의자에서 내려왔다. 예배실을 나올 때까지도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죄송하다는 말을 할 타이밍인 것 같았는 데도 그러지 않았다. 아홉 살의 내 머리로는 선생님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예배 시간 이외에는 피아노를 치면 안 된다고 할 것이지, ‘신성한 피아노’를 ‘왜’ 치려고 하냐니. 내가 하느님이라면 사랑하는 아이의 연주를 그저 흐뭇하게 바라봤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습관적인 교회 방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교회를 가지 않은 건 내쪽이었지만 오히려 내쫓긴 기분이 들었으므로. 물론 잘 다니던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어린이 예배실에 들어가지 않고 교회 계단에 앉아 있다가 걸리기, 엄마에게 헌금 내라고 받은 돈을 쫀드기 사 먹는 데 써버리고 혼나기 등등 어린아이가 신념을 고집하기란 순탄하지만은 않구나를 느꼈던 시절이었다.
한국기독교총연맹이 인정하는 소위 ‘사이비’가 아닌 교회에 발을 들인 적도 있었다. 계기는 문화상품권일 때도 있었고 학교 앞에서 나눠주던 떡볶이일 때도 있었으나 일요일 아침, 결국 나로 하여금 현관을 나서게 했던 마음은 그 너머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교회의 경험이 어땠는지는 딱히 이야기할 것이 없다. 몇 번 안 가고 도중에 발길을 끊어버린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회라는 공간에서 구하고자 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소속감,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줬으면 하는 마음, 차별 없는 사랑…. 하지만 그런 건 늘 교회 안에만 있으리란 법은 없고 교회 밖에서만 찾을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런 걸 나 아닌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가. 오로지 나 스스로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을 밖에서 찾지 않아야지.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나는 신앙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