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고 싶지 않은 결혼식

~통일교 2세가 축복 결혼에 대처하는 방법~

by 나쵸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가고 싶지 않은 결혼식에 더 많이 초대된다는 사실을 성인이 되고부터 심심치 않게 느끼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 시기가 남들에 비해 조금 일렀는데, 엄마가 다니는 교회의 본질이자 신앙생활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이십 대 후반이 되고 나서부터는 엄마가 주일날 교회에서 돌아오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 엄마는 뻥안치고 한 주에 적어도 한 커플의 결혼 소식을 들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 수찬이 다음달에 결혼한대.

- 또?

- 이번 기수에는 원지도 같이 한다더라.

- 너도 이제 축복 받을 때가 됐지.


교회에서 돌아온 엄마가 아침에 베란다에 널어둔 옷가지들을 곱게 개서 내 방으로 들어온다. 두 명의 청첩장도 함께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엄마에게 눈길도 주지 않지만 엄마는 아랑곳 않고 내가 그 청첩장을 펼쳐 어떤 리액션이라도 해주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 말했잖아. 키 185 이상, 미국 아니면 영국 국적, 니콜라스 홀트 닮은 사람이랑 매칭시켜주는 거 아니면 안한다니까. 나의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우스개소리에 시무룩해진 엄마는 그런 사람을 만나려면 일단 교회를 자주 나와야 하고, 축복 대상자에 등록을 해야한다니 어쩌니 하는 볼멘소리를 하며 옷가지들을 옷장에 넣고 저녁을 차리러 주방으로 향했다.


침대 맡에 놓인 두 장의 청첩장은 기묘하리만큼 닮아있었다. 화이트 톤에 성의없는 일러스트 몇 점이 그려져 있고, 금박이 입혀진 텍스트가 빌어먹을 ‘Wedding Day‘라는 점까지도. 전혀 다른 두 쌍의 커플이 결혼을 하는데 청첩장부터가 이렇게 닮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릴 적, 나를 가장 난감하게 했던 질문은 ‘너희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난거야?’였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국제결혼은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엄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쉬운 가정 배경이었다. 하지만 태어나고 보니 엄마가 일본인이었던 나는 오히려 일본인으로 자란 엄마가 없는 가정을 상상하지 못했다. 누가 물어보기 전까지는 특이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한테 어떻게 프로포즈를 했냐는 질문에 아빠가 자꾸 말을 얼버무릴 때도 그냥 경상도 남자라 쑥쓰러워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도 나는 초등학교 저학때까지 여느 가정과 다름없이 아빠가 엄마에게 한눈에 반해서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를 해서 둘이 결혼에 이르게 됐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엄마 아빠의 결혼에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걸 처음 느낀 건, 교회에서 만난 소꿉친구의 집에 놀러 갔던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당시에 우리 집 햄스터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새끼를 낳아 곤란해하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꺼내자 친구가 자기도 한 마리 키워봐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가장 무늬가 진하고 눈이 동그란 정글리안 햄스터를 주기로 마음먹고, 사료와 베딩까지 챙겨 친구 집을 찾았다.

햄스터의 습성과 사육 방법을 한참 진지하게 설명하던 내 눈에 문득 친구네 안방 화장대 위에 놓인 부모님의 웨딩사진이 들어왔다.그 사진 속에 나란히 서 계신 두 분이 우리집에 걸려 있는 엄마, 아빠의 웨딩사진이 찍힌 곳과 놀랍도록 똑같은 배경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의 웨딩 사진이 찍힌 장소는 일반적인 결혼식장이라기보다는 흡사 경기장의 한 구석에서 찍은 것처럼 축구장에 깔리는 잔디와 트랙이 있었다. 어린 내 눈에도 그곳은 일반 결혼식장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매일 보는 사진이라 익숙해지기는 했어도 장소가 주는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 친구의 부모님도 결혼식을 했다고? 결혼식장은 그렇다치고, 우리 엄마가 입고 있던 웨딩 드레스를 친구네 엄마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친구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나는 집에 돌아와 장롱 위에 걸린 사진 말고도 결혼식 날 찍은 사진이 더 있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왜 갑자기 그런 걸 보고 싶어하느냐고 가타부타 묻지도 않고 스스럼없이 서랍에서 앨범을 꺼내왔다. 엄마는 아빠와 단둘이 찍은 사진 외에 결혼식 때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나에게 더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들은 어린 날의 나에게 적잖이 큰 충격을 안겨줄 만큼 파격적인 결혼 사진이었다. 사진은 요즘 사람들이 ‘드론샷’, ‘항공샷’ 으로 부를 법한 구도에서 찍혀있었으며 그 속에는 똑같은 드레스와 양복을 입은 신랑 신부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경기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ss.png Source: AP / AHN YOUNG-JOON

- 엄마, 사진에 엄마랑 아빠가 왜 이렇게 많아?

- 이 사람들은 엄마, 아빠랑 같이 결혼식을 올린 다 다른 교회사람들이야.


결혼식날에는 한 번에 한 커플씩만 결혼을 한다고 누군가 내게 말해준 일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결혼을 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들은 바가 없다. 엄마는 이 날에만 36만쌍이나 되는 커플이 엄마와 함께 축복을 받았다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결혼을 ‘축복’이라 불렀다. 그 ‘축복’은 교회를 세운 창시자 부부를 합쳐 부르는 호칭인 ‘참부모님’이 내려주는 것이기에 축복의 상대를 정하는 데에는 엄마와 아빠의 의지가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고작 수건 한 장을 살 때도 색감과 재질, 도톰함의 정도까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을 때려버리는 지금의 나에게 평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일을 남에게 맡긴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황스러워하는 내게 엄마는 말했다. 이기적이기만 했던 엄마가 ‘참부모님’을 만나 좋고 싫은 사사로운 감정들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하느님과 나를 만날 수 있었다고, 이런 기적같은 일이 놀랍지 않느냐고.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했던 건 한 날 한 시에 축복을 받은, 저 점처럼 찍힌 72만명의 사람들의 표정과 그들에게서 태어났을 108만명(교회에서는 이상적인 자녀의 수를 세 명으로 두고 있으니 어림잡아 짐작해보았다.)의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 날 엄마 아빠가 받은 것이 과연 축복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빠는 어쨌거나 결혼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만족스러운 노후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는 우리 삼남매가 축복가정 2세로 태어난 사실을 더없이 행복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저 경기장 속 엄마와 같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저 거대한 퍼즐을 완성하는 단 하나의 조각이 나라고 한대도 그럴 수는 없다고, 안방 문을 나설 때마다 거듭 그렇게 생각해왔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