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의 맛

~학교에서 나눠주던 순결 캔디를 기억하시나요?~

by 나쵸

빨간 머리핀을 한 키티가 등짝만 하게 그려진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던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의 일이다. 매주 수요일, 엄마는 학교를 마친 나를 데리고 대구 시내에 있는 중앙 파출소 앞에서 사람들에게 순결 캔디를 나눠주었다.


그 무렵 교회는 청소년들의 ‘순결 지키기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듣기로는 교회마다 배포해야 하는 순결 캔디의 개수가 할당량처럼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교회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캔디를 나눠주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나는 본의 아니게 엄마의 짝이 되어 캔디를 나눠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분홍색 혹은 파란색 포장지에 'pure love'라는 이름이 프린팅된 순결 캔디는 내 손바닥만 한 투명 비닐봉지에 낱개씩 포장되어 있었다. 순결이라는 단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었던 나는 단지 내가 사탕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남들도 그 사탕을 받고 싶어 할 거라는 달콤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순결 캔디를 들고 엄마와 수많은 인파 앞에 선 첫날부터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길거리를 행인들의 대부분은 사탕에 관심이 없었다. 나한테나 사탕은 받아쓰기 백 점을 받거나 칭찬 스티커를 다 모았을 때처럼 특별하게 잘한 일이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상이었지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사탕이란 발톱에 때만큼도 매력적이지 않은 미끼 상품이었다. 세상천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도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 엄마가 건네는 퓨어러브 캔디를 선뜻 받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건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시켜서였나, 안쓰러워 보이는 엄마를 도와주고 싶어서였나, 빨리 캔디가 없어져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나, 도무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내 손에는 순결 캔디가 가득 담긴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 안녕하세요! 캔디 받아 가세요!


순결 캔디의 매상은 엄마보다 내가 좀 더 높았던 것 같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단 어린아이가 밝게 인사를 하면 사람들은 쉽게 무장해제가 된다는 걸 그때부터 약디약은 나는 알고 있었던 듯하다. 더러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더욱 오기가 생겨 비장의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 이 사탕 진짜 맛있는데··· 공짠데···.


세상 아쉬운듯 캔디를 바라보며 눈을 글썽거리는 모습을 본 사람은 누가됐든 내 손목에 걸린 비닐 봉투와 엄마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이 똑같이 캔디를 나눠주는 모습을 번갈아 보게 된다. 그러면 그는 십중팔구 순결 캔디를 받아가는 것 말고는 이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에서 본인을 구제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직감하며 마지못해 캔디를 받아든다.


번번히 캔디 강매에 성공해 흥이 오른 나는 순결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악착같이 순결캔디를 쥐어주었다. 상당수는 배가 나오고 머리가 빗겨진 아저씨거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순결이 뭔지는 몰라도, 내게 있어 사탕이란 좋은 것이었고 좋은 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더 좋은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순결 캔디를 들고 길거리에 나서지 않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달이 흐르고 나서였는데, 매주 수요일을 은근히 기다리기까지 하던 내가 엄마에게 왜 더 이상 캔디를 나눠주러 나가지 않느냐고 물어도 엄마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한국기독교통일교대책협의회에서 순결 캔디 배포 중단을 촉구했다는 2004년의 기사가 남아있지만, 정말 그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그 일을 물어보려다 관두기로 한다. 지금 교회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검찰의 수사로 한껏 예민해진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순결을 다짐하고 참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의미에서 순결 캔디를 나눠줬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 캔디가 그만한 효과가 있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만큼이나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고 있지 않은 친한 동생은 순결 캔디를 족히 다섯 봉지는 먹었을 텐데도 매 연애가 2년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조금 오래간다 싶으면 아니나 다를까 요즘 눈에 들어오는 뉴페이스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또 다른 교회 친구는 5년동안 몰래 교제하던 비(非)교회인 남자 친구와의 결혼을 무대포로 선포하는 바람에 집이 뒤집어졌다고 한다. 지나친 다짐이 해가 되는 경우가 이런 경우일까?

어쩌면 발상부터가 문제였을 지도. 사탕처럼 달콤한 사랑에 형체 없이 녹아 사라지고 마는 게 순결인 것을, 왜 하필 그런 순결을 사탕에다 갖다붙였나 모르겠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에서 말하는 순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관심도 없다. 나에게서 캔디를 받아 간 사람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길 위에서 엄마 몰래 입에 털어 넣곤 하던 순결 캔디는 가끔 생각이 난다. 이제는 그 캔디가 무슨 맛이었는지, 알맹이는 무슨 색이었는지 까마득하지만 그때 그 아저씨와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이 캔디를 먹었고 또 먹지 않았는지 궁금해지는 밤이 종종 찾아올 때가 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순결도 그런 맛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가물가물한, 하지만 달콤했던 것 같기도 한, 기억이 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 그런 맛.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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