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사랑(1)

~손녀를 사랑하지 않는 할아버지도 있을까?~

by 나쵸

응당 받아야 할 내 몫의 사랑이 있을 텐데,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랑의 부재를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어떤 동화책에도, 드라마에도 손녀를 끔찍이 사랑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고명딸이 신원도 알 수 없는 남자와 만리타국에서 살림을 차려 낳은 아이여서일까? 아무리 떠올려 봐도 할아버지의 눈길이 따스하게 나를 내려다본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엄마는 별다른 일이 없어도 할아버지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안부를 늘어놓았다. 할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로는 부쩍 더 그랬다. 전화의 끝자락에서 엄마는 항상 나를 불러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나는 그 시간이 설레면서도 무서웠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전화로 이루어지는 오 분 남짓한 대화를 이끄는 사람이 매번 나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밭에 있는 옥수수는 잘 자라는지 쉴 새 없이 물어보는 내게 할아버지는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지만 나에게는 궁금한 것이 없어 보였다.


캔버스에 할아버지의 얼굴을 그려 보내고, 몇 통의 편지를 해마다 써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선물에 대한 그 어떤 반응조차도 떼인 돈 받아내듯 이쪽에서 채근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는 보상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 가족을 찾지 않았다. 여섯 명의 손주와 두 명의 증손주가 있는 할아버지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게 할아버지는 한 명이었는데 말이다.


일곱 살 무렵, 어느 여름 방학의 일이었다. 세 남매를 씻기는 일은 품이 많이 드는 터라, 엄마가 안쓰러웠던 외가 친척들은 번갈아 가며 우리의 목욕 시간 단축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런 노고가 무색하게도 우리는 늘 엄마와의 프라이빗한 목욕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그날 밤은 운이 없었던 여동생이 할아버지와 목욕할 차례였다. 미운 일곱 살이었던 여동생은 욕실 입구에서부터 집이 떠나가라 자지러졌다. 온몸으로 악을 써대는 탓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할아버지는 여동생을 붙잡아 순식간에 창고에 가둬버렸다. 엄마가 사정해 봤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보다 못한 할머니가 침실로 들어간 할아버지를 대신해 창고의 열쇠를 꺼내 왔고 그제야 퉁퉁 부은 눈의 여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목욕 시간에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뇌리에 깊이 박힌 기억이었는지, 이따금 할아버지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날의 일이 떠올라 서늘해졌다. 그때는 폭군 같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외갓집 식구들로부터 우여곡절이 깊었던 엄마 아빠의 결혼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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