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사랑(2)

~내 딸이 사이비 종교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한다면?~

by 나쵸

도쿄에 사는 친척들로부터 ‘딸이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그날 하루 밭을 매는 일도 포기하고 새벽같이 상경해 엄마의 자취방을 찾았다. 십여 년의 자취생활로 작은 방 빼곡히 채워져 있던 엄마의 물건들은 두 명의 부지런하고 노련한 농부의 손길을 만나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뽑혀 나갔다.


본가에 내려옴과 동시에 무기한 상경 금지형에 처한 엄마는 큰 반항 없이 조용한 나날을 보냈다. 마을에 있는 모두가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안심할 만도 했다. 그렇게 엄마를 둘러싼 촘촘한 감시망은 나날이 느슨해졌다. 엄마가 시내에 빵을 사러 간다고 집을 비웠던 그날조차도.


그날 엄마는 손가방 하나를 들고 가장 빠른 도쿄행 고속버스를 탔다. 다시 도쿄로 상경한 엄마는 직장 동료로 만나 함께 교회를 다니던 친구에게 맡겨둔 여권과 모아둔 얼마간의 돈을 건네받고 그 길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 뒤, 엄마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는 외갓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전화의 내용은 본인이 지금 한국에 있으며 곧 교회를 통해 만난 한국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라는 이야기였다.


흡사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엄마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니 어쩌면 여동생을 가뒀던 일조차 할아버지에게는 사랑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덮어놓고 품 안에 가둬놓으면 똑똑한 내 새끼는 분명 제 잘못을 뉘우치리라는 믿음, 그게 할아버지만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런 사랑을 내던지고, 당신 품을 떠나 저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길 선택한 엄마를 할아버지는 다시 품어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위와 함께 포대기에 싸인 아기를 안고 돌아온 딸을 보며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이 땅에는 없는 할아버지를 향한 질문은 아직도 끝없이 이어진다. 할아버지는 왜 나를 사랑해야 하나? 그것이 내리사랑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할아버지를 사랑했나? 내려오는 사랑도 없었는데. 왜 내려오는 사랑이 있어야만 사랑할 수 있나? 사랑에는 위아래도 없고 왼쪽 오른쪽도 없을 텐데.


질문의 종착지에 다다랐음을 느낀 나는 별수 없이 할아버지를 사랑하기로 선택했다. 그게 세간에 통용되는 사랑의 방향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기에.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