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만신 가족의 이야기~
길고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나가는 오늘은 나의 예쁜 고모 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마침 안방 구석에 예쁜 고모가 놓고 간 백만 원짜리 주열기가 눈에 아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쁜 고모는 내가 막 기기 시작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본인을 매번 ‘예쁜 고모’라고 부르도록 했다.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습관적으로 고모의 생김새와는 상관없이, ‘예쁜’이라는 형용사의 본뜻을 조금도 사유할 틈 없이, 고모를 ‘예쁜 고모’라고 불러왔다. 그 결과로 나는 아직도 주입식 교육의 훌륭한 모범사례로 친척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10년 전, 개인적인 일로 큰 상실의 아픔을 겪은 예쁜 고모에게 아빠는 종교의 의지해보는 건 어떻냐고 넌지시 물었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다녀보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특정한 종교를 추천한 것도 아니었다. 감정표현에 서툰 아빠의 전형적인 문제해결형 위로 방식이었을 뿐이다.
아빠 말대로 몇 군데의 종교 탐방체험을 거친 예쁜 고모는 아빠의 원래의 뜻과는 달리, 한국에서 신흥종교로 분류되는 종교이자 기업이기도 한 ’ㄷ세상‘에 입교했다. 지금은 어엿한 지부장이 되어 센터 회원들의 정신 건강 증진과 포교에 여념이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 사이에는 좀처럼 접점이랄 게 없었다. 결혼이라는 목표를 이룬 뒤 신앙생활에 소홀해지더니, 결국 불교가 더 맞는다며 불교대학에 입학한 아빠. 해가 갈수록 신앙심이 깊어만 가는 엄마. 그리고 대형 기획사와의 유착 의혹으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신흥종교 지부장인 예쁜 고모. 그들 사이에서 무교인 나는 그저 낯선 행성의 주민 같았다. 우리를 이어주는 건 오직, 혈연이라는 어마무시하게 질긴 인연뿐이었다.
우리 사이에 얽힌 혈연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가 처음으로 내 발에 채인 건 대학교 졸업시즌이었다. 내 존재의 쓸모를 세상에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이 불안장애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보험이고 나발이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무턱대고 정신과 병원을 찾아 약을 받아먹기 시작했고 머잖아 아빠까지 나의 내원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옛날 사람인 아빠는 마음의 병을 약으로 치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몇 날며칠을 내 의지에 호소하며 단약을 권유하던 아빠는 칠순이 넘은 노인들도 예쁜 고모를 만나면 그간의 인생을 돌아보고 가뿐해진 몸과 마음을 되찾아 온갖 수련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나를 곧장 고모네 센터로 보냈다.
예쁜 고모네 센터를 방문하기 전날 밤, 나는 심상치 않은 꿈을 꿨는데 그 꿈의 내용은 공교롭게도 내가 울면서 고모에게 화를 내는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