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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Sep 19. 2023

직장인에게 재미있는 일이란

뭐 재미있는 일 좀 없을까. 직장인이 자주 하는 말 톱 10을 뽑는다면 분명히 랭킹에 빠지지 않고 들어갈 법한 말이다. ‘재미있는 일’이란 건 뭘까. 무엇을 추천해 주면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성취감이 아닐까 한다. 성취감만큼 재미있는 게 없으니까. 예를 들어 내가 구하기 어려운 위스키를 수집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치자. 저기 머나먼 이국 땅 프랑스에 희귀하고 좋은 제품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인터넷으로 어찌어찌 찾아서 주류 세금이나 통관의 허들을 구글링으로 다 해결하고 주문까지 완료했다. 그럼 이제부터는 언제 도착하나 내 화물은 어디까지 왔는가 검색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드디어 제품을 받고 포장지를 뜯을 때라거나, 아껴둔 잔에 부어서 처음 한 모금 마실 때의 그 느낌. 그런 성취감이 재미가 아닐까.


그래서 ‘재미있는 일’ 타령하는 사람에게는 취미를 한번 가져보라는 추천을 한다. 그런데 막상 타령의 대가들은 대부분 건성으로 듣고 흘린다. 앵콜송으로 돈이나 시간 타령을 이어가는데 아니, 퇴근하고 돈이랑 시간을 써서 소주는 잘 사 먹으면서 그것보다 훨씬 저렴하면서 성취감 빵빵하게 느낄 수 있는 취미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거 뭐 어쩌라는 건가 싶다. 그때 깨달은 게 타령가들에게 ‘재미있는 일 없나’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이고’와 같은 감탄사나 ’얼쑤‘ 같은 추임새라는 걸 알았다(힙합에는 ‘YO’가 있다).


타령가들은 비유와 은유의 마술사들이니까 사실 취미 정도를 생각하며 내뱉는 말은 아닐 것이다. 직장 생활의 미래는 뻔하고 어둡기만 하고, 일은 하기 싫은데 그렇다고 번듯한 대안은 없고, 그런 일말의 모든 걱정과 근심들이 한데 뭉쳐서 나오는 작은 탄식. ‘아, 재미없다’


인생은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팍 바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마치 출근길 횡단보도에서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차량 한 대가 나를 덮쳤고 그 바로 다음날부터 나는 장애인으로서의 인생으로 재설정되는 것처럼, 인생의 큰 전환기는 갑자기 찾아온다. 계단 오르듯 ‘한 개씩 차근차근히’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인생이 변한다.


다만, 서서히 티 내지 않고 쌓이고 있는 무언가가 그 큰 변화를 촉발한다고 보는데, 매일 빼먹지 않고 술을 마신다면 평소 일상에서는 거의 티가 나지 않다가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암입니다. 치료가 필요합니다‘라는 통보와 함께 바로 그다음 날부터 암 환자 인생으로 전환되는 식이다. 브런치에 매일 빼먹지 않고 글을 쓰고 개인적으로 유료 강연도 찾아다니며 글쓰기 공부도 하다가 우연히 공모전에 응모를 했는데 덜컥 당선이 되어서 그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작가의 인생을 살게 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평소 서서히 쌓아가고 있는 무언가가 인생의 큰 변화로 발현하는데, 그게 갑자기 홱-짜잔 하고 등장한다.


그래서 기왕이면 내가 바라는 결과를 향해서 방향을 잡고 하나씩 쌓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가장 오랫동안 할 수 있을지 역시 고민해 보고 이것저것 시도를 해 본 후에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


수집을 좋아하는 후배가 있다. 각종 희귀한 해수어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길래 신기해했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번에는 레고를 모으고 있다고 했고 그 뒤로도 프라모델, 와인, 미술품 등 품목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 속으로 ‘한 가지를 잡고 오래 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브런치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웹 소설, 음악 만들기, 일러스트를 다 한 번씩 시도해 보았다. 전부 하나같이 겉면만 한 번씩 쓰윽 문질러서 먼지만 닦아본 것들인데, 그렇게 해서는 한 분야 깊은 조예를 가질 수가 없다. 아마도 조금 진행하다가 실증이나 한계를 만나서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게임으로 치면 처음에는 쉽고 재미있어서 흥미를 가지다가 난이도가 조금만 상향되면 ‘재미없어, 안 할래’ 하며 포기하는 식이다. 사실 그 지점에서 뚫고 나아 가야 실력도 늘면서 더 많은 성취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그 후배나 나나 ‘됐어, 여기까지’ 하며 포기가 빨랐던 것 같다.


일상의 재미를 느끼려면 성취감 있는 취미를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중에 진정 내가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걸 잡아서 꾸준히 계속 쌓아가다 보면 재미도 있겠거니와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도 있는 계기도 만들 수가 있다(취미로 시작했다가 직업이 되는 케이스도 많다).


그러나 마음 가득 불안함이나 초조함만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그 무엇도 추천할 수 없다. 그들에게 재미없다는 소리는 그저 한숨과 같은 탄식일 뿐, 진정 무엇을 찾으려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러게’ 하며 넘기는 수밖에 없다.


주변에 재미있는 게 참 많이 있다. 그러나 그전에 나를 조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바라는 미래의 어떤 장면을 상상해 보고 취미를 정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주제만 잡힌다면 나머지는 인터넷 검색이 모든 걸 해결해 주니 참 쉽다.


나? 나도 늘 재미있진 않다. 처음에는 설레고 좋았는데 그건 잠깐이고 수시로 난이도가 조정된다. 다만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고 막막한 부분은 어떡해서든 뚫고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다음 단계로 레벨 업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판을 클리어해야 더 재미있고 빵빵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묵묵히 그 입 다물고 열심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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