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
외투를 입는 날은 전자책을 챙긴다. 안주머니에 쏙 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가방을 들지 않아도 된다. 외투 없이 티셔츠만 입는 날에는 부득이 가방을 챙겨야 하는데 그때는 책이나 물병이나 지갑을 모두 넣고 다닌다.
요즘은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반팔 티셔츠에 얇은 재킷을 걸치고 출근을 한다. 가방을 들지 않기 때문에 전자책을 챙겨야 하는데 주말에 산 책이 생각나서 일단 손에 쥐고 집을 나섰다. 재킷 앞주머니에 넣어보니 들어가긴 하는데 주머니 밖으로 책이 살짝 튀어나온다. 그 모습이 뭐랄까, 바둑 공략집 들고 공원으로 향하는 아저씨 같달까. 정 뭣하면 뉴욕타임스를 들고 도시를 누비는 젊은 CEO처럼 책을 손에 쥐고 다녀도 되니까 일단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물건 잘 버리고 주변을 휑하게 하여 여백의 미 충만한 생활을 하는 게 미니멀 라이프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몸(먹는 것)과 마음(생각하는 것)에 대한 미니멀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하긴 그러고 보면 요즘은 영양소가 필요해서 먹는다기보다는 즐거움이나 재미로 먹는 일이 더 많아졌다. 기업은 이윤을 목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쏟아내고 있고 우린 거기에 발맞춰 쾌락을 좇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우울해도 먹고 즐거워도 먹으며 영양가는 ‘기업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하며 신경 쓰지 않는다. 쾌락의 진도는 후퇴가 없어서 더 자극적이고 화려하고 간편하고 빠른 음식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삶이 복잡해진다. 아침에는 커피를 마시고 점심에는 자장면을 먹고 간식으로 과자를 먹고 콜라 마시며 저녁은 초밥을 주문하고 야식으로 떡볶이 배달시키고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자 이것을 심플하게 하자는 건데, 필수 영양소(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위주로 조금씩만 먹고 비타민 C와 같은 영양제를 잘 챙겨 먹으면서 간단하게 가자는 얘기다.
그렇게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고?
중학생 때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당시에는 집에서 있는 오디오로만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계가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루할 틈 없이 삶이 풍요롭고 재미가 넘칠 것만 같았다.
당시 핫템이었던 소니의 워크맨은 너무 비싸서 삼성에서 만든 마이마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저렴한 걸로 부모님께서 사주셨는데, 엄청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니까 뭐, 누구나 아는 뻔한 결말과 같이 만족감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점점 내가 가진 것보다 성능이 훨씬 좋은 제품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녹음 기능이 있다거나, 카세트테이프 앞면 재생이 끝이 나면 자동으로 뒷면 재생이 플레이되는 기능이 있는(내가 가진 마이마이는 앞면 재생이 끝나면 테이프를 꺼내서 뒷면으로 돌려서 다시 넣고 플레이를 해야 했다) 제품을 원했다.
출근하면서 애플에서 만든 무선 이어폰 에어팟을 귀에 꽂고 있는데 문득 예전 그 마이마이가 생각났다. 그때는 밖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즐거웠는데 지금은 그냥 당연한 하루 루틴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다. 세상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좋아졌는데 나의 만족감은 과연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밖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충만한 기대감 그 본질로 회귀한다면 어떨까. 도구야 무엇이 되었든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에서 훨씬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음식의 본질에 집중한다. 이 음식이 탄수화물이다 치면 그걸 잘 씹고 삼켜서 내 몸 안에서 에너지를 만든다. 장기가 꿈틀대고 근육이 움찔하며 폐가 펌핑해서 우리는 숨을 쉰다. 간단히 말해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으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고 내장에 지방이 쌓인다. 고로 조금씩, 자주, 좋은 것만 넣어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한 땀 한 땀 의식하며 먹는다. 그렇게 본질에 집중하니 음식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재료에도 주목하게 된다. 공복감 때문에 먹는 것이 기다려진다. 심지어 맛도 있다. 강렬하게 타올랐다가 후회와 자책이 동반되는 일시적인 쾌락의 알고리즘과 다른 꾸준하고 묵묵하게 오래 남는 재미가 있다.
나도 한번 해볼까 싶어서 주말에 마트에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기름을 사서 빵에 발라먹었다. 맛이 있었고 무엇보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비운다, 버린다, 깨끗하게 한다. 꼭 필요한 것 중에 가장 좋은 것만 가지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내 인생에서 없앤다.
그렇게 ‘심플하게 산다’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후배를 만났다. 만 원짜리 지폐라도 한 장 꺼내 줄 것 같은 시늉으로 장난을 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책을 꺼내어 후배에게 보여줬다.
“한번 심플하게 살아보려고. 복잡하잖아 우리가”
후배가 멋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