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2차선 도로에서 추월 고민

가시거리가 100m 미만일 때 마음이 급해진다면....

by 인절미

집에서 직장까지 편도 36Km를 이동하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전하다보니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억지로 확보된다. 어떤 날은 원고 한 편을 머리에서 완성하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사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나 1년에 20회 정도는 다른 때와 다르게 생각도 조심스러울 만큼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다. 안개가 끼거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폭우, 폭설이 쏟아질 때이다.

폭우, 폭설 상황에서는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긴장하면서 운전을 해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기상 관련 예보를 들으면 출근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편이다. 반면 안개는 지리적 특징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일기 예보에서 언급하지 않을 때도 있다. 운전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여러가지(도로의 정체, 차량의 통행량 증가로 인한 혼잡성, 직장 도착 후 주차 등) 이유로 출근 시간이 빠른 편이지만, 평소 보다 늦은 시간 출근하는데 안개가 낀 상황을 만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가시거리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폭우, 폭설이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이미 익숙한 직장까지의 운전 경로에서 어느정도의 시야가 확보될 경우 추월을 고민하게 된다. 도로가 넓어서 추월 차선이 따로 존재하면 고민 없이 상황을 보면서 결정하지만, 직장까지 오는 길에 왕복 2차로를 지나야 할 때 이 고민은 깊어진다. 5Km정도 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방지턱이 많아 화물차 뒤에 배치된 경우 15분 이상 소요되는 도로다.

이 도로는 편도 1차로이기 때문에 앞지르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럼에도 도로 양쪽에 고요하게 펼쳐진 논을 바라보며 화물차 뒤에서 15분을 운전하다보면 답답함이 극에 달해 슬금슬금 도로교통법 위반에 대한 열망이 올라온다. 그러다보니 이 도로에서는 안개, 폭우, 폭설과 상관없이 1년에 5회 이상의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아니던가.

운전 실력에 자신이 없다는 것은 차선 변경, 빠른 경로 탐색을 통한 끼어 들기, 황색 신호에서 아슬아슬하게 꼬리 물고 교차로 통과하기, 도로 주변의 평행 주차를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 운전 실력이기에 왕복 2차로의 답답한 흐름을 견디는 것이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더라도 신속한 추월을 통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보다 내게는 익숙하다.

그러나 인간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창의성을 가치 있게 평가하지 않던가.

특히 안개가 낀 날은 주변 논두렁과 도로의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에 판단이 흐려져서 더더욱 용기를 내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안개로 인해 전방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느끼면 이상하게도 운전자를 중심으로 펼쳐진 좌우의 영역은 넓게 인식된다. 특히 평소 직장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안개로 인한 정체가 심해서 출근시간이 늦어지면 조급함이 작동하여 더욱 의사결정에 혼란이 생긴다.


오늘 출근 길도 이런 상황이었다.


도로 교통법을 위반하더라도 속히 답답함에서 벗어나 뻥 뚫린 차도를 속도감 있게 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몰려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운전실력에 대한 확신없음이 답답하지만 안전한 출근을 만들었다. 직장에 빨리 도착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대신 브런치에 올릴 글을 머리 속에서 정리했다.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시간적 관념이 오늘 내가 마주한 출근 길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하게 전방을 확인할 수 없는 한계가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으로 대략적인 유추가 가능하면서도 막상 정확하다고 단언할 수 없는 미확인의 상태. 그래서 미래학자들의 견해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 같다.

특히 추월이라는 위험 부담이 생기더라도 효율적인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선택 앞에서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투자의 성향이 수익성 보다는 안정성을 선호하기 때문에 안개 낀 상황이 기회로 느껴지기 보다는 위험 요소로 다가온다. 그러다보니 내 경제력은 불확실한 미래에 충분히 대비할 정도로 풍족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당장의 미래에 생계를 고민할 정도로 위태하지도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달까.


안개 낀 도로를 달리며 추월에 대한 열망은 있으나 답답함을 감수하고 꿋꿋하게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내 삶은 참으로 안전한 '소시민'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