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침

월요일이지만 괜찮은 아침, 추위에 엣지있게 준비

by 인절미

"여보, 'P' 깨워야 할 것 같아."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밥상에 숟가락을 놓으며 남편이 나를 불렀다.

한소끔 국이 끓어 오른 것을 보고 가스레인지 불을 끈 후 둘째 아이를 깨우러 걸어 갔다. 그런데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가 방긋 웃으며 나온다.


이 상황이 얼마나 굉장한 것이냐면, 태연하게 씻으러 가는 둘째를 제외하고 3명의 가족 성원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둘째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3명과 극강의 느긋함을 추구하는 'P' 한 명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손바닥 반절 정도의 적은 양의 밥이 담긴 밥공기 4개가 밥상에 차려지고 국이나 계란 후라이 같은 반찬 하나놓고 먹는 것이 우리집 아침 식사다. '이렇게 적은 양을 먹을 거면 그냥 아침을 건너 뛰지, 숟가락질 3번~4번이면 없겠구만'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끼니를 중요시하는 남편과 신혼 초기에 싸운 이후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삼시세끼를 유지하고 있다.

밥은 남편이 하고 국이나 반찬 한 가지는 내가 해서 먹는 것이 우리 집의 루틴이 되면서 한 가지이지만, 매일 아침 반찬을 고민해야 하는 나만큼이나 아침 식사를 불편해하는 구성원이 둘째 아이다. 가뜩이나 가기 싫은 학교에 가야하는 아침 시간에 뭐가 좋다고 밥까지 먹으며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둘째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 한다.

스마트폰을 10시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고 거실에 충전해 놓는 규칙도 지키고 있지만, 둘째는 종종 태블릿(PC)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거나 게임을 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하필 자신을 제외하고 세 명의 구성원이 모두 아침형 인간이라서 아침의 시작이 빠르다. 자고 일어났으나 피곤함이 가득한데 눈을 뜨고 일어나보면 모든 가족 구성원이 다 씻고 등교와 출근 준비를 마친 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식사를 마친 후 둘째의 밥만 밥상에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둘째는 침대에서 일어나 벌써 아침인 것에 짜증을 느끼며, 밤새 외계인이 지구를 내버려 둔 것에 화가 나지만 이제 중학생이니 그런 공상을 입밖으로 꺼낼 수 없음에 기분이 나빠져서 한참을 그대로 있는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환한 빛 속에 앉아서 밥을 먹는 가족들을 보면서 성미에 안 맞게 서둘러야 하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끼며 씻으러 간다. 그 모든 과정에서 둘째가 어떤 기분인지 가족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말'로 하지 않았을 뿐 표정과 행동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깨우러 가기 전에 둘째가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게다가 '방긋' 웃으면서 말이다.


씻고 나온 둘째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꾸려진 수학여행 캐리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침을 기분 좋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기어코 어제 저녁에 마지막까지 아이와 조율이 안 되었던 외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수학 여행을 가는 10월 하순은 이례적으로 더운 추석을 보낸 후 가을 비와 함께 갑자기 추워졌다. 수학여행 짐 꾸리기를 남편이 지속적으로 압박했으나 남편의 끈질긴 조언에도 불구하고 둘째는 일요일 저녁에야 짐을 꾸렸다.

수학여행 일정에 맞춰서 옷과 양말, 속옷을 즐비하게 늘어 놓은 것을 보고 남편은 아이가 고른 회색 코트가 추울 것 같다고 열 번도 넘게 말했다. 때마침 TV에서 '갑자기 내린 비로 내일부터 쌀쌀한 아침이 예상'된다는 일기 예보와 구글로 검색한 서울 지역 날씨 정보, 목감기로 병원에 갔을 때 의사의 조언 등을 근거로 아이에게 패딩을 권했다.

둘째는 아빠의 끈질긴 조언에 지쳤는지 자기 방에 들어가 안에 기모 안감이 들어 있는 후드집업을 가져와 캐리어에 넣으며 '추우면 이거까지 속에 입으면 돼. 그리고 이거 따뜻한 것도 있어'라고 말하며 회색 코트의 누벼져 있는 부분을 보여주었다. 결국 남편은 아이의 선택을 꺾지 못하고 '추울 것 같은데..'만 연신 말하고 어제의 짐싸기가 끝난 참이다.


그런데 전에 없이 기분 좋게 일어난 아이에게 어제 충분히 언급한 외투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남편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그런 남편을 보더니 뭔가 말하려다가 말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조금있다가 진한색의 대님으로 된 모자를 하나 들고 나와 코트 위에 두었다.


누가봐도 진회색 코트와 찰떡으로 어울릴 만한 코디였다.

남편은 둘째의 엣지 있는 조합을 보더니 픽 웃었다.


"확실히 패딩보다는 코트에 어울리는 모자네. 모자가 있어서 따뜻하겠네. 잘 갔다와."


수학여행을 다녀 온 아이가 보여준 사진에는 모자를 야무지게 챙겨서 쓴 사진들이 빼곡했다.


비록 수학여행 다녀와서 감기가 심해져 아빠의 잔소리 폭탄을 감내하며 코감기 약까지 먹어야 했지만,

엣지 있는 맵시를 위한 둘째의 뚝심 앞에 그게 뭐 별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