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게 보내버린 리즈 시절

연애 바보의 안타까운 철벽

by 인절미

7살 아들이 프로포즈를 받았다.


"엄마, 00이 나랑 결혼하고 싶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도화지를 보여주며 하는 말에 나는 여러 면에서 놀랐다.

인절미의 서사 (5).png

'요즘 애들은 빠르구나, 여자 아이들은 조숙하구나, 글씨랑 그림을 어떻게 이렇게 잘 썼지, 00이 주변 어른이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왔나보네. 우리 아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까?'


매우 고전적인 성향의 나는 아들이 프로포즈를 받은 것을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한심해하며 '고작 일곱 살의 연애에 뭘 그렇게 심각하냐'고 했다. 아들은 유치원 7세 반에서 00이와 공식 커플이었고 생일을 서로 챙겨주며 사이좋게 지내다가 유치원을 졸업하며 이별했다. 유치원 졸업식에서 서로 사진 한 장 같이 찍지 않고, 앞으로 다시 만나기 위한 부모의 전화번호 교환도 없이 마치 내일 다시 볼 사람들처럼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아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을 것과 전화번호를 물어볼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나 '부끄러우니까 하지마.'라며 나를 말렸다. 내 아들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좋아한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꾸 좋아하는 티를 내서 같은 반 남자아이가 놀리는 일이 생겼다. 결국 아들은 자신을 창피하게 했다며 여자아이에게 화를 냈고 아들을 좋아한 여자아이는 울었다. 그 후 아들에게 고백하는 여자아이는 없었으나 사탕과 선물을 받아오곤 했다. 그러면서 자기 반에서 일어나는 친구들의 연애 스토리를 이야기 해주는 데 고전적인 성향의 나는 초등학생의 열린 연애관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거침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또한 그렇게 쉽게 사귀고 헤어지는 것을 우리 아들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눈치 채고 있었다.


아들이 3학년이 되면서 @@이라는 여자아이에 대해 자주 말하는 것을 들으며 좋아하는 감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아들이 다닌 초등학교는 한 학년이 2학급이고 한 학급이 20명 내외의 소규모 학교인데, 3학년 때는 사귀다 헤어진 커플의 이야기가 10건 정도라고 했다. 그 중에 여섯 건의 커플 스토리가 ##이라는 한 남자아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만남과 이별이었다. ##이는 밝고 활기찬 성격으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6번의 이별때마다 슬퍼하며 울었다고 이야기했다.

4학년 여름에 아들은 @@이랑 ##이가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나는 아들의 안색을 살폈으나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으며 평소 학교 이야기를 할 때와 다름 없는 표정었다. 부엌에 설거지 할 그릇을 날라주는 아들에게 조용히 '@@이랑 ##이가 사귀는데, 너는 괜찮아?'라고 물었다. 아들은 '어.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와 4학년 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4학년 3월에 @@이랑 아들이 같은 반, 짝꿍이 되어 친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5월에 @@이가 아들에게 "**아. 너 나 좋아해?"라고 물었는데 아들이 그 아이에게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는데?"라고 말하고는 교실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것을 물어 본 @@이 싫어져서 그 아이가 누구랑 사귀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 말을 하고 휭하니 가는 아들이 그렇게 안타까웠다.


'하.....'

부모 대에 획득된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연애를 못하는 성향이 유전이 된 것인지 철벽을 치는 바보스러움이 닮은 것인지 몹시 안타까웠다. 나중에 아쉬움이 몰려온다고 해도 소용없으니 더 안타까운 일이다. 연애하는 법을 몰라서 고백하고 대시하는 남자들마다 퇴짜를 놓으며 철벽을 치다가 처음으로 사귄 사람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나의 고전적인 성향 탓인 것 같아서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나중에 남편에게 아들의 연애 실패담을 이야기 하니 남편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나한테 먼저 대시하고 고백하면 부끄러워서 거절하고 그랬어. 아마 **이도 비슷한 성향일 거야."


'아이고, 우리 아들은 쌍방의 철벽을 뚫고 연애한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진정한 연애 철옹성 DNA를 갖고 있겠구나. 이 안타까운 현실을 으찌야 쓰까잉~'


4학년 겨울에 아들의 방 쓰레기 통을 비우는데, 노란 포스트잇 여러 장이 나왔다.

글씨를 연습한 것 같이 모두 똑같은 내용이어서 안타까웠다.




"나한테 고백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