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엄마와 개미
근시가 있어서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다보니 안경을 쓰지 않으면 유난히 빛이 나는 별이 아니면 무심한 시선으로 훑고 지나갈 뿐 밤 하늘에 별을 발견하지 못한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보내고 나니 올 겨울은 이례적인 추위가 올 것이라며 뉴스마다 경고를 보내는 10월의 어느 날, 찬 바람이 벌써 불어와서 어쩌나 걱정하며 음식물 쓰레기를 탈탈 털어 버리고 몸을 웅크린채로 돌아섰다. 아직 10월인데 두툼한 외투를 입고 마스크를 쓴 다섯 살 정도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와서 잔뜩 웅크린 나와는 확실히 대비되는 준비성 좋은 어린이를 보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스크를 썼으나 전혀 어려움 없이 노래도 부르고 쉴 새 없이 말하는 아이의 걸음 속도에 맞춰서 아이 손을 잡은 엄마는 자상하게 대답도 해주고 질문도 하며 내 옆을 지나갔다. 벌써 10년 전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어린시절이 떠올라서 지나쳐 간 아이와 엄마를 돌아보았다. 아이와 엄마는 멀리 가지 않고 화단 쪽에 쪼그리고 앉아 개미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놀라운 발견을 한 듯 한껏 으스대는 아이의 시선을 좇아 엄마는 '정말로 놀랍다.'는 말을 하며 아이의 발견을 지지했다. 그러자 아이는 지치지도 않고 화단의 개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아마도 아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많은 것을 발견하고 신나할 것이다.
분명 내가 지나온 길이었는데 아이와 엄마가 발견한 놀라움과 신비를 나는 왜 못보고 지나왔을까?
갑자기 추워져버린 가을 밤 어느 화단에나 늘 있을 법한 개미는 내가 놀랍고 신비롭게 여길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아이와 엄마가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유심히 살펴볼 만큼 재미있고 신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근시가 없이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내가 무심히 훑어 본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반드시 많이 발견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과 같다. 결국 반짝임을 알아차리기 전에는 모두 풍경에 불과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광원이나 빛을 반사하여 반짝이는 물체나 모두 누가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풍경일뿐 반짝임이 아니다.
삶 속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 글로 옮기고 싶었다. 일상의 풍경으로 지나가는 것들 중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주워 잘 닦고 본래의 빛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놓으리라. 시력이 안 좋은 사람도, 일상의 할 일로 바빠서 스윽 지나가는 사람도 알아차리고 반짝이는 것에 시선이 머물 수 있도록 말이다. 일상에서 주워 모아 놓은 반짝이는 것들이 삶에 따뜻한 빛을 내는 온기로 전해져 우리 삶이 조금은 편안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