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강박증 원인 분석

상상력이 만든 감옥

by 김정훈

음흉한 순진함

나보고 순진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음흉한데 말이다. 나는 사람들 말을 잘 믿지 않지만, 사람들은 나를 잘 속는 사람이라 한다.


그들은 나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놀리는 것을 재미있어한다. 이런 생활이 나의 캐릭터가 되었기에, 사람들이 나를 놀리며 즐거워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내 삶의 장애물인 강박증 역시 이 모든 것과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지금 내 생각이 그럴 뿐, 나중에 또 다른 원인을 파악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만의 우주

나의 커다란 우주는 어머니였다.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도 어머니, 아니 엄마가 있었다. 한 번도 '어머니'라 불러본 적 없이 나이 들어서는 '엄니'라고 불렀던 나의 엄마. 태어나니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고 오직 엄마만 있었다.


우리 집이 가난했었다는 사실을 나는 50대가 되어서야 알았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서로 어렵게 살았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 한 친구가 "정훈이야 말로 어려웠지? 그 때 가게에 딸린 방 하나에 세 명이 들어가서 발뻣을 곳도 마땅치 않았잖아? " 이 말을 듣고서야 '아, 우리 집이 가난했구나'라고 깨달은 것이다.


우리 집은 정확히 말하면 우리 방은 구멍가게에 붙은 쪽방이었다. 미니 슈퍼도 아닌 간판 없는 구멍가게. 나이 차이 많은 누나가 나를 귀여워해 줬지만, 같이 어울려 놀 대상은 아니었다. 동네 친구들과 놀 때를 제외하면, 나는 가게에 붙어 있는 엄마 곁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내게 어머니가 우주였다면, 나는 어머니의 전부이자 삶의 의미였다. 비록 집은 가난했을지언정 나는 마음만은 부유하게 자랐다. 어머니가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칭찬해 주셨기에, 나는 내가 뭐든지 잘할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 철이 들어 타인과 부딪히며 나의 진짜 정체를 파악하고 나서는 어머니의 말을 다 믿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다.

바둑판 대교

어린 시절 나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바둑알로 알까기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얇은 바둑판을 반으로 잘라 자와 책받침으로 연결해 다리를 만들었다. 그 중간에 세숫대야를 두고 종이배를 띄운 뒤 혼자 스토리를 만들어 알까기 게임을 했다. 그보다 더 즐거웠던 것은 상상하는 것이었다.

몽상일 수도 있겠지만, 어릴 적 잠자리에 드는 것이 즐거웠던 이유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도한 상상이 나의 강박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지금 글을 쓰며 발견했다.


오염된 상상

누군가 농담으로 던진 말도 내 뇌에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며 머나먼 미래까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오버의 세계까지 진도가 나가 버린다. 사람들은 그런 내 반응을 보며 재미있어한다.


나트랑에서 들었던 "캄보디아 싱싱한 놈 두 개"라는 말도, 그냥 무시하면 그만일 것을 내 상상력이 작동하는 순간 온갖 경우의 수가 뇌에서 움직이며 한 편의 소설을 써버린 것이다.



'선택적 청결' 역시 여기서 시작되었다. 어릴 땐 화장실에 다녀와도 손을 씻지 않았는데, 6학년 때쯤 손을 씻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과할 정도로 손을 씻는다.


상상력이 커질수록 문 손잡이의 찜찜함을 견디기 어려워졌다. 화장실 손잡이에 묻은 병균이 기어 다니다가 내 팔로 옮겨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논리가 생긴 이후에는 긍정적인 말조차 부정적으로 필터링된다.


"이 음식 소화 잘되는 거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뇌와 신체의 신경세포가 충돌하며 오히려 소화가 안 되기 시작한다. 상상력으로 단련된 나의 뇌가 작은 트라우마나 말 한마디에도 온몸으로 반응하고 마는 것이다.


PS: [브런치북] 60대 교사의 은밀한 이야기 지금 연재하는 60대 교사의 은밀한 고백의 전편에 해당하는 브런치북입니다. 제가 갑자기 강박에 대해 적었는지 이 책을 보시면 이해되실 겁니다.

수, 토 연재
이전 04화04. 나트랑 필사의 탈출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