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상상이 만든 블랙홀

무너진 나의 성

by 김정훈

쓰레기차와 지퍼

청소차가 온다. 아무리 피해도 청소차가 나를 따라오는 것 같다.

나는 몸을 움츠린다. 모든 지퍼나 단추를 완전히 채워 내 몸을 옷 속으로 숨긴다.


바람이 내 쪽으로 제발 불지 않기를...

몸 안으로 무언가 들어와 기어 다니는 것 같다.

살 위에 꿈틀 되는 느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몸에 닭살이 일어난다.


집에 들어가 겉옷을 실내 자전거에 걸어놓는다. 잠바와 바지는 나로부터 먼 자전거 손잡이에, 그리고 티셔츠는 나의 가까운 쪽 손잡이 쪽에 걸친다.


그러고 손을 씻는다. 그리고 깨끗한 손으로 거실 실내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러고 졸릴 때까지 일을 하거나 TV를 본다. 졸린다. 소파에서 존 적은 있어도 나는 안방의 침대에 바로 누울 수 없다. 안방 문은 외부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꼭꼭 닫아둔다.


졸음을 참다 잘 시간이 되면 거실의 옷은 거실에 벗어두고 샤워를 한 후

완전히 정결한 상태에서 안방에 들어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침대에 눕는다.

잠 오는 순간을 놓쳐 잠이 안 온다.


잠은 와도 오염으로부터 보호되었다는데 안심은 된다.

그러나 너무 힘들다. 쥐벼룩의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힌다. 정말 거짓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나의 의지와 사회적 경험, 즉 남들에게 이 유별난 행동이 들키지 않으려는 발버둥, 이성적 판단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받아들이는 생존 본능으로 남들 보기에는 멀쩡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쥐벼룩 트라우마는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20명이 쓰는 화장실

우리 집은, 아니 내가 살던 주인집은 우리 가족을 포함해 일곱 가구 정도가 모여 살았다.


별채를 제외하면 다섯 가구였는데, 별채라고 해서 대단한 건물은 아니었다. 그저 무너져가는 인접한 집을 주인이 인수해 붙여놓은 곳이었다.


우리 방은 그나마 인구 밀도가 제일 낮았다. 단둘이 살았으니 말이다.


주인집이 마루와 방 두 개를 썼고, 나머지는 셋방이었다. 자그마한 방문을 열고 나가면 가게가 있고, 가게 뒷문을 열면 장독대와 옆방이 보였다.

장독대를 끼고 직각으로 돌면 수돗가가 있었다. 지금 말로 설명하니 대궐 같은 집 같지만, 사실 50평 남짓한 공간에 방 여섯 개와 거실, 마당, 장독대, 수돗가까지 다닥다닥 몰려 있는 구조였다.


어릴 때는 그 비좁은 공간이 왜 그렇게 넓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문제의 화장실은 본채와 별채 사이에 있었다. 집 안의 터널 같은 어두운 통로를 지나 우회전해서 직진하다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곳. 허름한 나무판자를 엮어 만든 구조물에, 희미한 전구 하나가 겨우 빛을 밝히던 그곳을 많을 때는 스무 명 가까운 사람이 함께 썼다.


화장실 옆에는 축대가 있었고 축대 위에는 다른 집들이 있었다.


윗집과 옆집 사이, 축대 경계에 잡초가 무성한 공터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을 '뒷동산'이라 불렀고 잡초가 무성했다. 나는 잡초도 다 꽃인 줄 알았다.


거기서 훈련한다며 축대 아래로 뛰어내리기도 하고, 축대를 타고 올라가 더러운 화장실 지붕 위를 휘젓고 다니기도 했다. 어릴 때는 그곳이 그렇게 더러운 줄도 몰랐다.


가보가 된 요강

밤에는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방 안에 요강을 두었다. 87년도였나, 우리 반 제자들이 가게에 붙은 우리 집으로 놀러 왔을 때의 일이다. 요강이 도자기인 줄 알았던 녀석 하나가 그걸 가보냐며 소중하게 껴안는 게 아닌가.

다행히 비어 있긴 했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녀석들은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그 깊이와 오랜 세월 축적된 '역사'에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75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화장실 문화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화장실이 아니라 변소지!


아주 어릴 적 추운 밤, 화장실에 갈 때면 누나가 반드시 나를 데리고 가 밖에 세워두곤 했다.


그때는 누나가 왜 그렇게 무서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화장실 밑을 지나다니는 쥐들은 내 놀잇감이었다.


나는 쥐를 잡겠다며 소변 줄기로 겨냥해 맞추곤 했다. 쥐를 도둑이나 원수로 생각했을 뿐,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곳은 우리의 생활공간이자 놀이터였으니까.


어머니의 한 마디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 다녀오자마자 온몸에 벌건 두드러기가 돋았다. 온몸이 간지러웠다.


어머니는 쥐벼룩에게 물린 거라고 하셨다. 당황하긴 했지만 몸은 금방 회복되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쥐벼룩'**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박히자, 내 상상력은 그것을 무한히 재생산해내기 시작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고? 더러워서 피하냐고? 아니다. 나는 이제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


쓰레기차가 왜 뚜껑을 닫고 달리는지 아는가? 먼지가 묻을까 봐 닫는 것이다.


내 꼴이 딱 그렇다. 집 안 청소는 잘 안 하면서. 외부의 오염으로부터는 극도로 민감한 선택적 결벽증이다.


예전엔 샤워할 공간조차 없었다. 부엌도 없어 방에서 물을 떠다 은밀한 곳만 겨우 씻어내던 시절, 수돗가에 사람이 많아 길거리에서 세수하던 내가 이제는 '접촉성 결벽증' 환자가 되었다.


쓰레기차만 봐도 온몸이 간지럽다. 저곳은 쥐가 다녔던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예전에는 똥을 밟으면 "재수 없네" 하고 말았지만, 이제는 화장실의 쥐와 연결되어 닦아도 닦아도 사라지지 않을 '오염의 흔적'이 환상처럼 남는다.


내 편이었던 고양이마저 위협이 되었다. 쥐를 못 잡는다고 구박하면 주인의 신발에 쥐를 잡아다 놓는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기피 대상이 된 것이다.


고양이는 변한 게 없는데 나의 상상력이 고양이를 바꿔버렸다. 개는 원래 공포였는데, 이제는 '개벼룩'이라는 새로운 무기까지 장착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내가 겪는 고통이 쥐벼룩 때문이라는 근거는 오로지 어머니의 말뿐이었는데……. 나의 내면의 성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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