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의 군주
가난했다는 것을 50대 때 친구와의 대화 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이 글을 쓰다 보니 나의 본능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난 82학번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중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우리 집 앞 금강제화에는 내 또래의 여공들과 남자아이들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등록금 고지서가 나오자 마자 등록금을 제일 먼저 냈고, 참고서도 부족함 없이 다 사주셨다.
어머니는 소학교 2학년 중퇴였고, 방과 가게도 월세였다. 그런데도 난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는 월세를 내고 빚을 갚으며, 돈이 모이면 보증금을 올려주셨다. 이제야 생각하니 우리는 정말 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 나는 몰랐다. 아니, 마음속으로 부정을 한 모양이다. 어머니는 슈퍼맨이었다. 슈퍼 주인이라서가 아니라,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도 어머니는 종종 가게 문을 24시간 열어두곤 하셨다.
경찰과도 안면이 있어 "아주머니 문 닫으세요. " 말 한마디만 하고 그냥 지나간 적도 있었다.
방과 가게가 붙은 구조에서 잠시 졸다가 문을 못 닫고, 밤늦게 오는 손님에게 물건을 파는 생활. 정말이지 어머니는 쪽잠을 잤지, 단 한 번도 긴 잠을 주무신 적이 없는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1년 365일 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쉬기 위해서 내게 가게를 맡긴 적조차 없었다. 그래서 요즘도 꿈을 꾸다 보면, 내가 엄마 대신 구멍가게를 보는데 물건값을 몰라 당황하다 깨는 경우가 있다.
우리 집은 샤워할 곳이 없었기에 엄마는 내가 씻을 따뜻한 물을 방으로 떠다 주시곤 했다.
샤워는 매일 못 해도 속옷은 매일 갈아입었다.
어머니가 내의를 삶으시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의 나는 60대 고아라 옷이 꼬질꼬질하지만, 그때 내 옷은 늘 다리미로 빳빳하게 다려져 있었다. 내가 새벽 공부를 한다면 몇 시에 자든 아침밥을 차려주고 도시락도 싸주셨다.
그 어머니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쓰다가 눈물이 난다. 엄마는 그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는 어떤 위기에도 자기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 새였던 것이다.
나는 늦둥이다. 우리 방은 어머니의 직장이자 나의 양육 장소였다. 엄마에게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엄마에게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나하는 무의식이 나의 삶을 늘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유일한 울타리인 어머니, 배운 것 없어도 온몸으로 나를 지켜준 어미 새가 죽는다면 나 역시 살지 못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나이키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엄마의 삶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나는 우리 형편에 그것을 탐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매일 죽어라 일해도 평생 월세를 사는 것을 보고 체험했기에, 나이키는 우리의 삶과 맞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저 견고해 보이는 엄마도 언젠가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꼇을 것이다.
나는 그때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지만, 공부를 못하면 죽는다는 시대적인 상황이 나에게 강박을 주었다. 그리고 상상력이 동원되어 공부하다가도 미래를 걱정했는지도 모른다.
24시간 움직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그래서 나는 놀고 있어도 무언가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으로 지금도 무조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쥐벼룩의 환각에 시달릴 때 온몸이 가려워도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는 성은 튼튼한 돌성이 아니라 어머니의 뼈와 살로 이루어진 성이었기에, 그 성이 허물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살아야 했다. 나의 숨겨진 선택적 결벽증은 생존 본능으로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새로운 성, 아파트가 만들어진 후, 나는 선택적 결벽증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샤워를 매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샤워를 하면 쥐벼룩이 내 몸에서 다 떨어졌을 것이라 믿었다.
나의 신성한 방에 들어갈 때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들어갈 수 있다. 나는 밖에서 쓰레기차를 봤을 때 가려움을 느끼지만, 사실 그 가려움은 어린 시절 상상력이 만든 산물이다. 어머니의 성에서 살기 위해 참는 연습을 했기에 그냥 받아들이며 산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피할 수 있는 나의 성이 있기에 집으로 들어오면 그 옷을 멀리 던져버리고 거실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샤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실에서 일을 하거나 티비를 보지, 결코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갈 수는 없다. 피곤하면 바로 자고 싶지만, 내 침실은 정말 나만의 최후의 공간이기에 반드시 샤워 후에야 들어간다.
가끔 소파에서 거실용 옷을 입고 잠시 짧은 시간 살짝 잠든 적은 있어도 거실용 옷을 입고 안방에서 잠을 잔 적을 없다.
그러나 소파에서 졸다가도 다시 깨면 샤워를 하고 나의 최종 방어막인 안방으로들어 간다.
사실 체념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살 수는 있다. 밖에서는 안 씻고도 잘 수 있지만, 내 성에서는 혹여 내가 성을 더럽힐까 봐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드라마에서 양복을 입은 채 침대에 눕는 장면을 경악과 부러움이 섞인 묘한 감정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