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게 놓친 것
사람들로 북적이는 을지로 거리에서 난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차림새는 변함없이 단정하다.
“잘 지내셨죠?”
“여전하네. 잘 지내지?”
그는 십여 년 전까지 나와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선배다. 아니, 내눈엔 잘 나갔던(?) 나의 상사였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그는 종이 한 장, 볼펜 한 자루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고,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을 하는 일벌레였다. 본인이 원치 않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야 했었기에 그의 뒷모습은 내 마음 한구석에 오래오래 남았다.
퇴사 후, 그는 아픈 아내와 함께 고향인 목포로 내려갔고, 또 몇 해 전엔 아내를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지금은 홀로 고향에 남아 작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라는 생각에 괴롭고 슬펐으며, 배신감이 들기도 했었노라 고백했다.
“젊었을 때는 주변을 볼 여유도 없이 그냥 회사만 열심히 다니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니까 많이 놓치면서 살았더라고. ”
“그래도 아이들 잘 키우셨고 …. 그럼 됐죠.”
“그 말도 틀린 건 아닌데 ….”
그는 지금에 와서 후회되는 것도 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크게 바뀌지 않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노라 말했다. 어려운 어른이었던 선배는 퇴직 후 마음씨 좋은 어르신이 되어 있는 듯했다.
“별것도 아니었는데 여기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어.”
“에헴. 그땐 고지식의 표본이셨죠.”
‘요 녀석 봐라, 이제 많이 컸네.’하는 눈빛이다!
“사람을 품고 갈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살아보니 그렇게 사는 게 맞아. 젊을 때 건강도 잘 챙기고!”
나이를 먹으니 욕심이 없어지고, ‘왕년에’를 내려놓으니 어린 사람 밑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것도 힘들지 않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내가 첫 출근했던 날, “차근차근 배우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던 그는 퇴직 후에도 후배에게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고 돌아갔다. 몇 시간 후 카카오톡으로 후배에게 얻어먹은 점심이 참 맛있었다는 인사와 카카오톡 커피 쿠폰 한잔이 도착했다.
‘그래도 여기만 한 회사가 있겠나? 충분히 즐기시게.'
지금의 이 시간이 아깝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배의 말처럼 충분하게 이 시간들을 충분히 즐겨보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난 왕년에~라고 말할 것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