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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성공담

by 한그루

친정집은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쭉 한 집에 살았으니, 세월만큼 오래된 물건들이 한 자리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 당근마켓에 가입한 이유는 엄마의 물건을 정리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엄마는 죽어가는 꽃도 살려내는 마법의 손을 가진 사람이다. 국민학생인 내가 선물한 오백 원짜리 토막 행운목을 키워 그 어렵다는 꽃도 피워내고, 가지치기를 해서 동네 사람들 집으로 분양을 보내기도 한 화초계의 금손이라 하겠다. 그 능력을 사람들은 부러워했지만, 많은 화초는 집 안은 어지럽게 하는데 한 몫 했다. 그뿐인가? 김장철이 되면 화초들이 얼지 않도록 크고 무거운 화분을 집 안으로 들여놓느라 고생을 해왔다. 화초를 키우는 행복은 있겠지만, 이 많은 화분들을 혼자 관리하는 것은 이젠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판매하여 정리를 하는 것이라고 설득한 후, 팔 화분을 엄마에게 직접 골라 달라고 부탁했다.

실제 팔았던 화분

'이건 여행 갔다가 눈에 밟혀 다시가서 데리고 온 아이',

'그리고 이건 친구랑 하나씩 나눠가진 아이.'

엄마는 화분과 추억 하나하나 끄집어 내며 아쉬워했고, 나는 화분을 하나하나 닦아 사진을 찍고 사연을 담은 짧은 설명 글을 올리며 화분을 정리해 나갔다.

'고급진 아이입니다. 좋은 분이 데리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천 원, 삼천 원, 오천 원. 저렴한 가격에 올려서인지 예상보다 빠르게 연락이 왔다.


그중 HA*PY님이 여러 개의 물건을 구입하겠다며 채팅메시지를 보내왔다.

'이것도 제가 살게요. 혹시... 아직 올리지 않은 화분 있으신가요? 작은 화분이 있다면 더 구매하고 싶습니다.'

처음엔 누가 이런 걸 사겠냐고 했던 엄마는 그 상황을 신기해하면서 궁금해했다.

'많습니다. ㅇㅇ동 XX로 오시면 보여드릴 수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손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한 번에 정리할 도 있겠다는 마음으로 집으로 올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다행히도 인상 좋은 60대 초중반쯤 보이는 여자분이 방문했고, 화분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며 말했다.

"올라온 화분들을 보니까 특이한 화분도 많고, 고민하면서 고르신 게 느껴져서 다른 것들도 구경해보고 싶었어요."

엄마는 본인이 얼마나 고심하면서 골랐는지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느꼈는지 감춰 놓았던 화분을 몇 개 더 꺼내와 서비스로 얹어주었다. 엄마는 그 후에도 몇 차례 화분을 정리해 나에게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사를 앞둔 나는 요즘 또 다시 추억을 정리하고 있다. 집을 정리하는 일은 역시나 쉽지 않다. 무료 나눔을 통해 아이들이 읽었던 책과 몇 번 사용하지 않은 크리스탈 컵,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받은 커다란 접시를 나눴고, 새 주인을 찾아갔다. 공간도 비우고 잘 쓰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누고자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게 부담스럽단 생각을 할 즈음 현관 문고리에 작은 쇼핑백이 달렸다.

'잘 쓰겠습니다. 사랑초 구근입니다. 9월 초에 심으시면 예쁜 꽃이 핀답니다.'라고 쓴 메모와 함께...

작은 수고가 감동으로 되돌아온 순간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예쁘게 키우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피곤하지만, 난 이사 전까지 계속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이 아이를 새로운 집으로 데리고 가 우리 집에서 가장 예쁜 화분에 키울 생각이다.

싹이 올라오고 알록달록 예쁘게 사랑초 꽃이 피면 그분께 '님 덕분이다' 인사해야지... 기대된다. 사랑초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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