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종녀씨의 기분이 좋다.
"나 선생님한테 칭찬받았어. 가장 많이 늘었다나?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안 늘겠냐고."
선생님은 친구들 앞에서 "Good!"이라며 엄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고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엄마보다 훨씬 어린 선생님에게 받은 칭찬 덕분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종녀씨는 영어 공부가 제일 어렵지만, 가장 재미있는 과목이라고도 했다.
발음은 헷갈리기 일쑤이고, 단어는 아무리 외워도 머릿속에 고작 몇 개밖에 남지 않아 아쉽지만 학교에 다닌 이후로 영어 공부를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도 했다.
"어쩔 수 없어. 영어를 잘하려면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해. 달달 외우는 수 밖에…"
나의 말에 엄마는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더니 노트 한 뭉치를 꺼내왔다.
"한 학기 동안 쓴 노트인데 그냥 버리기는 좀 아쉬워서 모아뒀어."
"이 많은 노트를 다 썼다고?"
그간 공부한 흔적을 펼치는 엄마에게 칭찬 한마디를 보탰다.
"역시 우리 엄마. 정말 대단하네. 이게 대체 몇 권이야?"
"영어만 30권이야."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다.
무엇보다 값진 엄마의 기록들을 어딘가에라도 남겨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가보로 남겨야겠다. 이거 나 줘!"
"뭐 하게- 그리고 이건 대충 써서 글씨가 삐뚤빼뚤해. 다음에 잘 쓰면 한 권 주던가 뭐~."
딸도 알아주지 않는 열정을 알아봐 주고, 엄마의 기를 살려준 선생님이 고맙다.
난 직장생활을 하면서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대학원을 다녔다.
그때는 육아와 직장, 그리고 학업까지 나에게 동시에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냈다. 돌이켜 보니 힘들었어도 난 내 인생에서 그때 가장 과감했고 용감했다. 40대 후반에 접어드니 새로운 도전이 점점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생활이 익숙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뭘.'
'배워서 써먹을 데도 없는데.'
'편하게 살자고, 편하게!‘
바쁘다는 핑계 속에 숨어 '도전’이라는 말조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에 생각이 더해진다.
이젠 아이들도 제법 컸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문제는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보며 씩 웃어 주었다.
“너 정말 잘하고 있어. 내가 너를 잘 알지. 정말 기특하다. 한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