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맡아보는 평일 공기와 부산 바다에서
2025년 불경기의 4월,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월 초까지만 해도 퇴사에 관한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상황은 급격히 변했고, 상황의 변화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겹치면서 월초에 세워둔 2025년 한해의 계획을 지키지 못한 채 5월에 회사를 나가기로 했다.
나도 나름의 계획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아직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와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경험, 회사에서 지금까지 일한 경력과 함께 지금까지 많은 상황들을 잘 헤쳐왔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스스로에 대한 판단과 함께 5월 한달동안 인수인계 후 6월에 나름 정들었던 회사를 나갔다.
만료된 자격증 갱신과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컴퓨터 공부,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을 위한 포트폴리오 준비 등등 퇴사 후에도 할 일은 많았다. 게다가 이제 백수라는 사실에 마음은 불안했기 때문에 퇴사 한달 전부터 퇴사하고 해야할 많은 일들에 대한 계획을 길게 세워두었다.
하지만 퇴사하자마자 한 일은 평일에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니, 퇴사한 첫 주는 조금 쉬어가도 괜찮지 않겠냐며 평일 바로 부산으로 가는 SRT 열차를 예매한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내 자신에 대한 작은 보상이기도 하고, 2박3일 늦게 취업준비를 시작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면서 그렇게 무작정 부산으로 떠났다. 이제 백수라 피곤할 일도 없으니 여행 뽕을 뽑겠다는 각오로 새벽 5시반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기차 예매 후 출발 바로 전날까지는 새벽 5시반 기차라니, 새벽부터 사서 고생인가 싶으면서 이렇게까지 부산에 가야하나 하는 마음에 살짝의 후회도 있었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생각보다 눈은 금방 떠졌고, 그 전날까지는 느껴지지 않던 설렘이 가득 느껴졌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 집을 나서서 기차에 올라 잠시 눈을 붙였다 뜨니 금방 아침이 되었고, 어제 밤까지 서울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보니 부산 바다에 있는 꿈만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저번주까지는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광안리 바다 앞에 앉아서 멍하니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니, 꿈을 꾸는 듯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비로소 내가 '퇴사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6월 초의 어정쩡한 평일 부산바다는 말도 안되게 평화로웠다.
광안리 바다를 두바퀴정도 걸은 후 근처 알아봐둔 브런치카페에서 커피와 팬케이크를 먹었는데, 평일 오전 10시여서인지 손님은 나 혼자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와 평일 오전 공기에 기분이 오묘하면서 그 차분함이 낯설었지만 기분 좋았다. 주말이었다면 카페에 잠시 앉았다가 웨이팅으로 대기하는 사람들을 피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반수였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 나 혼자 조용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평일은 카페 뿐 아니라 대중교통도, 길거리도, 상점도 그 모든 곳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전부 한산하고 여유로웠다. 너무 오랜만에 느낀 평일의 공기여서 어딘가 혼자 딴 세상에 온 듯 낯선 기분이 들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동안 내가 놓친 여유로운 공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서 잠시 그동안 지나온 하루하루를 곱씹어 보았다. 바쁘게 회사를 다니던 순간부터, 그 이전에 처음 회사에 들어가서 인턴으로 바쁘게 적응하던 순간들, 그 이전에 대학교 졸업 후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몰라서 방황하던 순간들과, 졸업 전 인턴으로 바쁘게 보낸 나의 마지막 대학생활... 그 이전의 졸업준비 등등.. 나도 모르는 순간 나는 많은 시간들을 지나서 지금 이 시점에 와 있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는 느리고, 지루하게 흐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모이고 모여서 어느 순간 많은 일들이 과거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하루하루 바쁘게 매일을 살아오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놓치고 있던 시간들의 소중함과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할 지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나의 퇴사여행 첫날이 벌써 반나절 흘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