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큐레이션 1
판도라의 상자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난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한 여자다. 한국인들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그 이름에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염원을 담고는 하는데, 이 여자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신들이 그녀의 삶을 미리 계획해 두고서는 그에 걸맞는 이름을 그녀에게 붙여줬으니 말이다. PANDORA는 라틴어로 모든(PAN) 선물(DORA)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그녀는 정말 끝내주는 사람이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다면 십 중 십 고개를 돌리도록 예뻤고, 저명한 학자들조차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명석했으며, 요새로 치나 그새로 치나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의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생득적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좋은 기질을 받고 태어난 것도 모자랐는지 신들은 그녀에게 특별한 상자를 선물해 주며 이제야 너에게 모든 것을 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그 상자에는 절대 열어 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브가 기어코 게걸스럽게 사과를 먹어 치운 것처럼 판도라도 상자를 열어버렸다. 그 안에는 인간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이 들어앉아 있었고, 상자가 열리자마자 그것들은 굶주린 맹수마냥 뛰쳐나왔다. 그것들이 거의 모두 상자 밖으로 탈출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판도라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얼마나 골 때리는 일이었겠는가. 백날천날 잘해주던 친구가 갑자기 풀스윙으로 따귀를 때린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상자 속의 것들이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었으니,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차례대로 돌려가면서 연거푸 따귀를 때리는 친구를 어느 날 보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판도라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상자의 뚜껑을 허둥지둥 덮는다. 이미 세상은 진짜 박살이 난 후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웃기게도 상자 속에 어떤 것이 하나 남아있었다고 말한다. 그 녀석의 이름은 '희망'이었다.
전통적으로 이 이야기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된다. 하나는 인간의 주제를 알고 과도한 호기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 교훈은 아무리 짜내도 더 이상 골수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오래 우려먹은 문학적 주제이니 그냥 넘어갈 만하다. 세계 제일의 베스트셀러도 이 주제 의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리 거창하게 갈 필요도 없이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어.' 같은 민간 속담도 존재하는데 뭔가 지혜가 담겨있긴 한 것 같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널리 퍼져 있는 두 번째 해석이다. 비록 상자가 열려 이 세상에 불행이 존재하게 되었지만, 상자 속에는 아직 희망이 들어있으니, 힘을 내서 살아가렴.
먼저 신들이 정말 자신이 한 말을 잘 지키는 녀석들이란 것은 확실하다. 그들은 어느 날 모여서 어떤 여자를 만들 것인데, 어떤 축복을 내려야 할지 고민이라고 회의했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겠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선물해 주고 이름을 판도라라고 짓자고 말이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것 참 기발한 생각이라고 동의한다. 그러자 짜증 나게 똑똑한 다른 신 하나가 말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면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까지 주어야 하는데, 그건 논리적으로는 타당하지만, 합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축복이 아니냐고 꼬집었을 것이다. 이렇게 초를 치는 것들이 어느 모임에나 하나는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는 대신 끔찍한 것들을 한데 모아 어떤 특별한 상자에 담기로 했다. 그 상자 속에 담긴 것들은 '존재'하지만 외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 엄밀히 따지면 판도라는 모든 것을 받았지만, 그중에 좋은 것들만 그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기에 그녀는 축복받은 존재로 태어났다.
상자 속에 들어있는 존재들은 모두 끔찍한 것들이다. 이에 따르면 희망은 상자 속에 들어있는 존재이므로 인간에게 해가 되는 끔찍한 존재다. 그런데 자신의 상자 속 룸메이트들과 다르게 희망은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죽음, 질병, 고통과 같은 것들이 상자가 열리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실제 세계와 영향을 주고받을 때에만 악한 성질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희망은 상자 속에 들어있으며 존재는 하지만, 실제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때 본인의 악랄한 힘을 비로소 발휘할 수 있다. 희망은 판도라가 황급히 상자를 닫는 바람에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 아니다. 희망은 자신과 함께 비좁은 상자에 갇혀 있던 동지들이 서로를 밀치며 모두 나갈 때까지 교활하고도 느긋하게 누워서 잠이나 자고 있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간 희망은 오히려 힘든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상자 속에 희망은 흔히들 말하는 희망 고문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희망이 상자 속에 들어있는 채로 끝을 맺는다.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 치의 왜곡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늘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떠올리며 인간의 굴하지 않는 정신과 그의 동반자 희망에 감사해하고 흐뭇해한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있으니,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라고 지금도 희망을 품고 있는 나를 비롯한 신촌의 무수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면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유희적 논증이 다 무슨 상관인가. 마음에 들든, 다 부수고 싶든, 던져진 삶이다. 관념적 희망도 희망이고,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간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가끔씩 이 글들을 읽는다.
처음 추락하는 날개는 들큼, 시큼 -에디터 세계
머무르는 이들이 있었음을 -에디터 찬란
신촌은, 현재진행형-신촌동상가번영회 -에디터 로스
그럴 때면 희망은 상자 밖으로 종종 고개를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