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큐레이션 2
"뚝심 있다"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긍정적인 말로 작용한다. 목우촌의 나름 맛있는 햄을 광고할 때, 또는 고집불통인 사람을 반어법으로 칭찬할 때 물론 그러한 어휘를 사용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이는 자신의 근거 있는 주장을 끝없는 피드백 속에서도 관철시키는 이를 일컫는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 타협하지 않는 고집,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감탄한다.
최근 한국을 휩쓸고 지나간 <체인소맨> 열풍을 떠올려본다.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는 기이하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광기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여동생에 대한 집착은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 <파이어 펀치>에서도, <여동생의 언니>에서도, 그리고 <체인소맨>, <예언의 나유타>의 곳곳에서도 *여동생이라는 모티브는 끈질기게 반복된다. 정상적인 창작자라면 어느 순간 자신의 패턴을 의식하고 다른 방향으로 틀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지모토 타츠키는 그러지 않았다.
*잔치의 최 모씨는 이러한 작가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체인소맨>의 ‘레제’보다는 ‘파워’를 좋아하는, 멋진 오빠로 성장하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특정 대상, 취향에 집착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창작자가 말이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이상한 것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게 된 순간, 그것은 독창성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뚝심이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시장이 원하는 것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이 그리고 싶은 방식으로, 자신이 집착하는 소재로 그렸다. 그리고 그 뚝심이 결국 사회를 설득하였다. 이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것이 뚝심의 역설이다. 세상은 변화를 요구하고 탄력성, 유연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존경한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을 기억한다. 타협하지 않는 창작자를 추앙한다. 모순적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뚝심 있는 글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글이다. 독자가 원할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쓰는 이가 해야 할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세련되지 않더라도, 거칠더라도, 심지어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써야 했던 글. 그런 글들이 결국 남는다.
앞선 신촌 -테세우스의 배- 에서의 도스토옙스키를 생각해본다. 그의 글은 세련되지 않았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쓰였고, 때로는 지나치게 장황했다. 언제나처럼 난해한, 존재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방황하는 영혼에 대한 끈질긴 추적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는 ‘고전’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우리는 지금도 그의 글을 읽는다.
그래서 우리는 묻는다. 당신의 글에는 뚝심이 있는가? 당신이 쓰는 이야기는 누군가가 쓰길 바라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당신이 써야만 하는 이야기인가?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애쓰는가, 아니면 당신만의 기준을 세우려 하는가? 답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뚝심 있는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잔치의 에디터들은 이를 몸소 보여왔다. 변화하는 신촌 앞에서, 그럼에도 써야 할 이야기들을 빚었다.
진절머리 – WELCOME TO ZANCHI [웹진 잔치]
404. 다채로운 사랑의 악보 – WELCOME TO ZANCHI [웹진 잔치]
209. 당신의 행복은 무엇으로부터 오나요?: 카페 27도씨 – WELCOME TO ZANCHI [웹진 잔치]
시간이 지나도, 트렌드가 바뀌어도 우리는 그때의 신촌을, 그리고 그들의 뚝심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계속 써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