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큐레이션 (5)
삶은 자주 클리셰에 따른다. 우리는 '인식'을 통해 삶을 예측할 수 있지만, 정작 그 패턴을 알면서도 반복한다. 영화 같은 삶을 동경하면서도 극적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건, 되돌아봄을 인정하기 싫어서일까. 그러다가도 결국 그를 택한 과정을 후회하지만,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웃긴 건, 이 깨달음마저 클리셰라는 점이다.
오늘은 잔치의 아카이브에서 세 편의 글을 꺼내 왔다. 2010년대 중반, 그리고 20년대의 태동의 시기에 신촌의 조용한 변화를 담은 이야기들이다. 플레이스, 아트, 피플—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패턴을 건네는 이 글들이 작은 설핏함과 웃음을 남기길 바란다.
2020년, 바이러스와 함께 시작한 연대에 어떤 에디터는 《The World Without Us》를 펼쳤다. 그리고 상상했다. 사람 없는 신촌을. 빈스빈스 2층 녹색 소파가 무너지고, 지하 피자 가게 메모지들이 찢어지고, 벚꽃잎이 신촌역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 결론이 웃겼다. 우리가 신촌에 남길 가장 오래가는 기억은 스타벅스 플라스틱 컵이라는 것.
2016년, 잔치는 윤동주 시 작곡 경연대회 3회 수상자 봉한울을 만났다. 그는 "내가 슬픈데 이유가 없다"는 구절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나 혼자 아등바등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1940년대나 2016년이나 청춘의 무력감은 똑같은 것이다. 그는 그걸 클리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공감을 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겠다.
2015년 11월, 잔치는 체화당에서 이태영과 김준성을 만났다. 당신은 신촌 대정전을 아는가?
서울 신촌 일대 대규모 정전, 신호등까지 꺼져 암흑사태 ‘공포’ | 한국경제TV
이태영은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위기 상황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공간은 공동체로 자립함으로써 발현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들이 몇몇의 예술과들과 함께 주최한 Hacking the City Festival에서 그들은 신촌의 도로를 인간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자유를 부르짖는 펑크락의 울림, 그리고 인간만이 통행할 수 있는 신촌의 거리. 더불어 그는 자본주의가 인간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신촌이 에너지 자립마을로서 발돋움해야 하는 이유란다.
"이케아가 조만간 에너지 자립마을을 팔 거예요. 근데 우린 이케아가 싸지길 바라면서 기다려야 하나요?"
삶은 클리셰를 따르고, 우리는 그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1940년대 윤동주가 느낀 무력감은 봉한울이 꿈꾸는 한 가락이 되었고, 2015년 전환도시가 꿈꼈던 미래도 결국은 과거로부터의 답습된다. 혹시나 모르지 않는가, 우리가 없는 신촌 또한 반복될 미래일지.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걷는다. 도탑게 반복되는 길 위에서, 각자의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말이다. 함께 걷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국 그 발자국들이 겹쳐지는 순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플라스틱 컵으로 남을지언정, 공감으로 위로받으며, 새로운 주민성을 만들어가는 우리.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게 우리가 함께 외로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