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루에게(3)
그래 난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어.
우리는 뜨겁게 작별 인사를 했고, 난 그곳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도시로 이동을 했으니까. 여행은 며칠 남지 않았고 마침 한국에서 친구도 왔거든. 그런데 내가 스리랑카를 떠나는 날 네가 내 숙소로 오겠대. 그러지 말라 했어. 여긴 멀고, 난 혼자가 아니고, 너와 함께 할 시간이 없다고. 그래도 오겠대. 그래서 그럼 너 혼자 오라고 했지. 고맙잖아. 마중 같은 건가 보다 생각했거든.
그런데 도착했다는 네 전화를 받고 숙소 앞으로 나갔을 때, 조금 놀랐어. 바다로 낚시를 하러 떠난 아빠를 빼고 너희 다섯 식구가 다 왔더라고. 나는 식구들을 내 방으로 데리고 왔어. 다시 한국으로 들고 가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을 좀 포장해두었거든. 너는 영어를 못하니까 사용법을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말이야. 각종 화장품, 세면도구, 필기도구, 옷, 수건, 담요, 드라이기, 먹을 거 등등.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도 짐을 탈탈 털었어.
그때 너희 엄마와 네가 말했지.
메이크업 세트는 왜 없냐고. 그 금목걸이는 나를 주면 안 되냐고. 영어라고는 한마디도 못하던 셋째는 갑자기 영어로 말했어. 내일부터 학교를 가야 하는데 가방이 없다고. 막내 아이는 신발을 안 신겨 왔어. 난 그렇구나 했어.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만 가라고 했지.
방문을 닫기 직전에 막내를 안은 엄마는 뒤를 돌아봤어.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밀고 말했어. “머니.”
나도 말했어.
“NO.”
그게 너와의 마지막이었어. 큰 이변이 없으면 아마도 영원히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서 미안해.
따루, 너는 내년 가을에 네가 한국에 일하러 올 거라고 말했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기에 나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는 줄 알았어. 따루야, 내가 여행하며 만난 스리랑카인들 중 한국에 일하러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어. 그들은 열과 성을 다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몇 차에 걸친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했어. 그리고도 모자라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한국어를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어.
넌 뭘 하고 있니?
네가 통역이랍시고 하던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던 영어. 어지간한 퀴즈보다 풀기 어려웠던 다 틀린 너의 영어 문자들. 모르면 모른다고 똑바로 말하는 게 배움의 시작이라고 말했지? 나는 네가 아니라 너의 엄마와 나이가 같다고. 무례하게 굴거나 아이를 다루듯 나를 대하지 말라 고도 말했어. 그렇게 예의 바르지 못하고 욕심만 많아서는 한국이 아니라 어디서도 일 하지 못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타국의 언어를 대하는 사람은 절대, 한 글자도 제대로 배울 수 없을 거라고 얘기했어. 나한테 돈 달라고 하지 말고 인터넷 좀 아껴 쓰라고. 너 그렇게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면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한다고 하냐고. 네가 첫째라 이 집안을 일으킬 희망이라고? 따루야, 정신 똑바로 차려. 너처럼 하면 너희 집은 평생 이렇게 살아야 돼. 4살 먹은 다 큰 애한테 엄마의 마른 젖을 먹이면서. 무식하게 누가 변기에 생리대를 버렸는지 막혀버려 악취가 나는, 문도 불도 없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바퀴 벌레가 쏟아져 나오는 부엌에서 겨우 밥을 해 먹고. 작고 지저분한 방 안에서 여섯 식구가 모여 자면서. 동생들은 바지가 작아져서 엉덩이가 다 나오는데 너는 겨우 잡은 기회에 네 옷이나 몇 벌씩 사면서 그렇게 계속 살게 될 거야.
따루야,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뭔데 네 삶의 태도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왜 너의 가난이 나를 화나게 할까. 공부해야 한다. 배워야 한다. 오늘 먹을 밥도 없는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한 걸까. 왜 네가 이 집 안의 희망이 되어야 할까. 왜 너에게 너의 나라 말이 아니라 영어 잘 쓰기를 강요했을까. 왜 너의 무례함에 가정교육을 탓할까. 너는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글/그림 : 두시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