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가 좋다

두 그림자

by 별똥꽃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반대 방향에서

가로등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뒤따라 오던 남자의 그림자와 여자의 그림자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순간

두 그림자는 같이 달아나기로 했다

두 그림자의 기대는 자신들의 키만큼 컸다


남자와 여자가 가로등에 점점 가까워지자

남자의 그림자와 여자의 그림자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두 그림자는 남자와 여자 옆으로 바짝 붙었지만

키가 점점 작아지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서로에게 닿지도 못하고

두 그림자는 지나쳤다


가로등을 지난 후

남자의 그림자와 여자의 그림자는 화가 났다

자신들의 마음을 몰라 주는 남자와 여자가 미웠다

두 그림자는 남자와 여자 앞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그림자는 남자 여자 앞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남자의 그림자와 여자의 그림자가 비록

다른 길로 가고 있지만

훗날 가로등에서 남자와 여자가 다시 지나칠 때

남자의 그림자와 여자의 그림자는

함께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때는 서두르지 않고 같이 멋지게 도주를 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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