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의 형제들

by 별똥꽃

장순이는 장금이 엄마가 낳지 않았지만 백일 때부터 키운 아이다. 장순이의 친엄마 시댁에서 장순이 아부지 집으로부터 위자료를 청구한 탓에 장순이 시골에서 일꾼도 거느리며 땅 꽤나 있었던 장금이 아버지네가 그 사건으로 (유부녀였던 장순이 엄마가 장금이 아버지와 정을 통해 장순이를 낳은 일) 집안의 문답은 거의 거들이 났다. 이 때문에 장순이의 작은 아부지는 장순이를 미워했다. 장순이 엄마만 아니었으면 본인에게 올 재산이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장순이가 자랄 때 장순이를 돌봐준 사람은 장순이를 불쌍히 여긴 친할아버지였다. 장순이 작은 아버지는 논구덩이에 어린 장순이를 집어던져서 머리가 거꾸로 박히게 한 적도 있었다. 장순이는 나이 어린 새엄마에게 많이 맞기도 했다. (장금이 엄마는 장금이 아버지가 총각인 줄 알고 속아서 결혼했는데, 결혼 한 이후에 백일 된 갓난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장순이 밑으로 장숙이가 태어났다. 장금이 엄마는 자신이 처음 낳은 아이인 장숙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물론 장남을 낳은 후에는 장남 다음으로 장숙이를 아꼈다.) 장숙이는 길거리에서 돈을 주으면 경찰서에 갖다 주는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배 다른 언니 하고도 곧잘 놀았다고 했다. 장숙이는 배 다른 언니 대신에 장녀 노릇을 했고, 엄마하고도 가깝게 지냈다.


장군이는 장금이 집의 장남이다. 장군처럼 용기 있고 늠름하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장군이는 집안의 희망이었고 공부도 곧잘 했다. 항상 전교에서 상위권에 들었고, 고등학교를 마친 이후에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군대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일 학기를 겨우겨우 마친 후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 해에 다시 시험을 보고 군대를 가지 않는 특혜를 주는 교육대학에 들어갔다. 겁이 많고 용기가 부족한 장군이는 이름값을 못했다. 그래도 교육대를 마친 이후에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야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 교수가 되어 자신을 끔찍이도 생각하는 엄마와 형제들을 자랑스럽게 했다.


장군이가 태어나고 몇 해 후에 장미가 태어났다. 닭띠라 그런지 요란스럽지만 자그마한 키에 얼굴도 예뻤다. 장군이처럼 공부도 곧잘 했지만, 장군이가 대학을 갔을 때쯤 엄마는 돈을 벌며 학교에 다니라고 장미를 야간 고등학교에 보냈다. 낮에는 미싱을 돌리고 밤에는 자신의 수준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업을 받았다. 바로 위에 오빠처럼 전교 상위권에서 놀던 아이가 다니기에는 견디기 힘든 학교였다. 설상가상으로 무좀까지 걸려서 그곳에서 일 년도 못 버티고 나오고 말았다. 장미는 이런 이유로 엄마를 아주 미워했다. 술쟁이 아부지가 늘쌍 했던 것처럼 엄마를 무식한 사람이라고 종종 말했다. 엄마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원망했다. 장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받기를 좋아했고, 자신이 싫으면 매정하게 뭐든 뿌리쳤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가시가 많은 그런 사람이다.


둘째 아들 장수는 자전거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에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 고등학교도 두 번이나 그만두고 고등학교 중퇴 이후에는 공장에서 두세 달 일하다가 놀다가 다시 일하기를 셀 수도 없이 반복했다. 집에서는 햇볕이 싫다며 불을 끄고 있을 때도 많았고,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이 싫어 티브이나 컴퓨터 화면을 끈 채로 소리만 듣기도 했다. 그래도 손재주가 좋아서 기타도 독학으로 배우고,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로 시도 잘 썼다. 장금이가 대학교 다닐 적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엄마 집에 내려갔었는데 어느 날 방에 가만히 누워 아무 반응이 없는 장수를 119에 연락해서 겨우 살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그 이후에 20년도 채 못되어 아이 둘과 부인을 이 세상에 남겨둔 채 장수는 영영 떠났다. 겨우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장금이는 예전에 오빠를 살린 것이 가끔 후회스럽기도 했다. 결국 그렇게 무책임하게 가버릴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장금이는 언니나 오빠처럼 전교권에서 놀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자신을 놀리는 남자아이들 두 명을 코피가 터지도록 패주었고, 고등학교 때는 동생을 이유 없이 때렸다는 동생 담임 선생님한테 항의 편지를 쓸 정도로 당돌했고, 마음에 둔 총각 선생님한테 연애편지를 보낼 정도로 맹랑한 아이였다. 고집이 너무 세서 상고를 가라는 엄마와 큰오빠의 권유를 물리치고 인문계 진학을 관철시켰고, 없는 살림에 무조건 대학을 간다고 엄마를 힘들게 한 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대학을 마쳤다. 장금이는 아주 고집스럽고 의지가 강한 아이다.


장금이 형제 중 막내 장학이는 초등학교 4학년을 거의 다 빼먹었다. 엄마는 집 나가고 없고 위의 형제들도 다 뿔뿔이 흩어지고, 술쟁이 아버지와 홀로 남았기 때문에 아이를 보호할 사람이 없었다. 장학이는 도시로 전학을 온 후 새 학교에서 다시 장기간 결석을 하다가 엄마가 장학이 담임 선생님께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집에서 엄청 두들겨 맞은 후에야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다시 탈선의 길로 접어들면서 고등학교 입학을 두 번이나 하고도 결국 중퇴하고 말았다. 그 이후에는 치킨 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일 년 동안 병원 신세를 졌으며 군대도 못 갈 지경이 되었고, 그나마 합의금으로 받은 큰돈도 술로 다 탕진해 버렸다.


장금이 형제들은 다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 다들 자신의 상처가 너무 아파서 다른 형제들의 상처를 위로해 주지 못한다. 장금이 형제들은 장례식에서나 서로의 얼굴을 본다. 그나마 장례식에서 조차 얼굴을 못 보는 형제들도 있다.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가 아니라 <한 가지에 나고 사는 곳 모르온저> 같은 그런 분위기의 형제들이다. 장금이는 그런 가족 때문에 너무 아플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장금이도 다른 사람들처럼 많은 일들에 익숙해져 갔다. 형제는 많지만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자신의 처지를 이제 그냥 원래부터 형제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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