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 집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중 유일하게 부족하지 않은 것은 사람 수였다. 농사를 지으셨던 장금이 부모님에게 아이들은 곧 노동력이었다. 하지만 장금이 엄마는 자식을 많이 낳은 이유를 다르게 설명했다. 장금이 아버지가 산부인과에 못 가게 해서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장금이 형제들의 존재는 계획된 것도 선택받은 것도 아닌 그냥 사고였다. 가난한 부모에게는 벌어먹어야 할 입이며 동시에 하나라도 일을 거들게 할 손발이었다. 장금이는 일곱 형제 중에서 끝에서 두 번째다. 장금이 부모가 시보다 작은 군의 제일 끄트막에 있는 양무리에 터를 잡고 난 후 태어난 아이가 장금이였다. 장금이의 백일 사진이나 돌 사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장금이가 본 자신의 가장 어릴 적 사진은 누군가의 품에 안긴 갓 돌을 지난 듯한 장금이 갓난아이적 가족사진이 전부였다.
부엌을 사이에 두고 방 두 개가 있는 직 사각형 구조의 시골집은 지금도 장금이 꿈에 나올 정도로 어딘지 모르게 무서운 곳이었다. 장금이가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장금이의 어렴풋한 기억 속 그곳은 어둡고, 담장이 유난히 높은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장금이는 꿈속에서 항상 문을 제대로 닫을 수가 없어서 불안한 곳으로 그 집을 본다. 장금이 집에는 방 두 개와 부엌 외에도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그곳에 변소라고 적혀 있었던 것을 장금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돼지와 닭을 키우던 축사가 두 군데 있었고, 집 앞으로 제법 넓은 밭이 있었다. 밭과 밭 사이에는 작은 고랑이 있었는데, 홍수가 나면 물이 밭으로 넘쳐흐르기도 했다. 장금이 가족의 밭은 한동안 포도 과수원이었는데, 나중에는 포도나무를 모두 없애고 야채밭을 만들어 그곳에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집 뒤 쪽으로는 장금이 마을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부대가 있었다. 제8**8 부대였다. 장금이가 동네 아이들과 초등학교에 갈 때면 큰길 쪽으로 난 부대 정문을 지나야 했고, 장금이와 동네 아이들이 같이 놀 때는 부대 후문을 통해 부대 안으로 잠입할 때가 많았다. 장금이 동네 사람들의 하루는 늘 "사나이로 태어나서..."를 복창하며 뛰는 군인들의 아침 체조와 같이 시작했다. 어쩌면 기상나팔이 먼저였을 수도 있다. 장금이 동네에는 그곳 대대장 사택이 있었고, 대대장 아이들은 군인들의 지프차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스쿨버스가 없는 시대였으니,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긴 했지만, 장금이 동네의 다른 아이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그들의 튼튼한 두 다리였다. 장금이가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계급 차이였다. 대대장 집 아이들은 동네 아이들과는 신분이 다른, 그러니까 뭐랄까, 만약 조선시대로 친다면 평민의 아이인 동네 아이들에 비해 대대장 집 아이들은 양반집 도련님 같은 그런 존재였다. 장금이는 대대장 집 아이들과 같이 놀았던 기억은 없고, 지프차를 타고 오가는 그 아이들을 먼발치에서 봤던 기억만 있다.
장금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집이 가난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배가 고팠고, 항상 추웠고, 항상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장금이는 자신의 가족이 "왜" 가난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장금이 동네 사람들은 다 고만고만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프차를 타고 학교에 가던 대대장 집 아이들이나 장금이 동네를 뽀얀 가루로 뒤덮었던 자개 공장집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느꼈던 상대적 빈곤감 외에는 장금이는 가난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25년 이후에 태어난 장금의 세대는 사실 지독한 가난을 잘 알지 못한다. 어릴 때 장금이는 장금이 가정의 빈곤이 절대빈곤에 가까웠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장금이는 가끔씩 고아원 아이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으니까. 고아원 아이들은 부모는 없지만, 매 끼니 밥을 먹을 수 있었고, 필요한 물건을 가질 수 있었고, 게다가 피아노를 배울 기회도 있다고 장금이는 들었다. 장금이도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사고처럼 태어난 장금이의 형제는 모두 일곱 명이다. 장금이가 초등학교를 시작할 무렵 맨 위의 두 언니는 이미 출가한 상태였고, 장금이가 중학교를 가기 전에 장남은 대학에 그리고 셋째 언니는 도시에 있는 야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장금이가 유년기를 같이 보낸 형제는 장금이 보다 두 살이 많은 둘째 오빠 장수와 네 살이 적은 남동생 장학이다. 두 남자 형제 사이에 끼어서 장금이는 밥하기 빨래하기 등의 집안을 도 맡아해야 했고, 부모님 외에도 오빠에게는 순종을 동생에게는 양보와 희생을 강요받았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장금이 집안도 유교의식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장금이에게 그 말은 너무 낯설게 들린다. 한 부모 밑에 태어난 (첫째 장순이는 아버지만 같고 엄마는 다른다.) 장금이의 형제들은 하나같이 다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장금이의 형제에게 공통된 점은 형제는 많지만 모두 의지할 곳 없는 고아 같다는 점이다. 잘난 형제는 잘나서 못난 형제는 못나서 다들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