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별똥꽃

장금이가 처음 술맛을 본 건 초등학교 오 학년 때였다

장금이 엄마는 과수원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술쟁이 남편이 미울 텐데 포도주는 왜 만드셨을까?

아무도 장금이 부모의 사랑싸움을 말리지 않았고

매일 반복되는 부모님의 사랑싸움에 지친 어느 날

장금이는 찬장에 놓인 포도주를 꺼내서 한 모금 마셨다

그 길로 집을 나가 십리 정도 떨어진 읍내에 갔었다


그 이후 다시 술을 만난 건 장금이 대학 신입생 시절

선배가 부어주면 다 마셔야 되는 줄 알고

달달한 동동주, 과일 소주, 생맥주, 막걸리

손에 닿는 대로 다 마셨다

사실 장금이도 술쟁이 아버지도 술을 잘 못 마신다

장금이 아버지는 세상에 고함을 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디든 쓰러져서 잠이 들고 싶었던 것이다


장금이가 교회를 다니면서는 술 마실 일이 없었다

사람이 아닌 다른 곳에 의지할 데가 생겼기 때문에

그때는 시련이 없었다기 보다는 불만이 없었다

장금이가 열심히 기도해서 얻은 삶에는 대가가 따랐다

돈은 있는데 시간은 없고 그렇게 신도 멀어져 갔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장금이는 변했다

장금이의 마음은 황폐해지고 몸은 늙고 지쳤다


장금이는 술을 찾았다

처음 한 모금은 달콤했다

술 한 병을 마시고 장금이는 술쟁이 아버지를 생각했다

장금이는 아버지가 불쌍해졌다

무슨 큰 고통을 안고 사셨기에 매일 술을 드셨을까?

장금이 아버지는 술이 깨면 열심히 일했고

낮에 번 돈으로 밤에는 술을 드셨다


그래도 장금이 아버지의 애들 공부하라는 잔소리 덕에

딸들은 늦게나마 다 대학공부를 했고

장남 장군이는 얼굴깨나 팔고 산다

장금이는 지친 자신의 모습에서 부모님을 본다

아이들 키우느라 지치고 사회생활에 지치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 없고


장금이는 술쟁이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기 위해

술병을 꺼내 든다

인생길은 외롭고 고단한 길

맨 정신으로 못 갈 땐 술 한잔 걸치고

노래도 한 곡 뽑고

술잔에 눈물도 한 방울 넣어

부어라! 마셔라! 오늘 밤은 마시고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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