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는 명절에 우울하다. 남들 다 노는 명절에 일한다고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친정 가족을 만나기는커녕 아이를 집에 남겨 두고 명절날 출근하는 마음은 편할 수가 없다. 벌써 여섯 해 전 설날 연휴에 갑작스럽게 온 친정 오빠 장수의 부고 소식에 장금이는 급하게 차표를 알아보았다. 명절이라 차표가 있을 리가 없었다. 급한 대로 입석 기차표를 샀다. 오빠가 있는 장례식장까지는 세 시간이 걸렸다. 입석 기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장금이의 마음은 너무도 슬프고 무거웠다. 남편은 어린아이들을 돌보느라 동행하지 않았다. 장금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짙게 어둠이 내려앉았고 장례식장은 온통 까맣게 덮여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입관식을 하던 날 수의를 입고 누운 장수 오빠의 모습이 장례식 이후에도 한동안 장금이를 괴롭혔다. 갑자기 오빠를 보내고 장금이는 큰 슬픔에 빠졌다. 추스를 수 없는 슬픔은 그 이후 몇 달 동안 지속되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고통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장수 오빠의 장례식 이후 해마다 설날 연휴에는 준비되지 않은 사별의 기억이 장금이를 괴롭혔다.
올해 설날, 장금이는 동생 장학이에게서 친정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정 엄마의 병환은 위중했고 만 17년가량 지속되었다. 수족을 못 쓰시고,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시고,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고, 식사도 못하시는 장금이 엄마는 사실 그동안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장금이의 형제들은 무조건 엄마를 살리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고 17년 전에 성급히 내린 결정을 줄곧 후회해 왔었다. 장금이는 그간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 괴로웠고 엄마를 뵐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지키지 못하고 (기계의 도움으로 간신히) 숨만 쉬고 계신 엄마를 보고 있는 것은 장금이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상태가 비슷한 여러 환자들과 같이 쓰는 병실 구석 작은 병상에 누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아무런 의식 없이 숨만 겨우 쉬고 계시는 엄마를 바라봐야 하는 자식의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래서 장금이에게 엄마의 사망 소식은 장수 오빠의 사망 소식과는 다른 아픔으로 다가왔다. 장금이는 설날 오후에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신 엄마가 애처롭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엄마가 병마에서 자유로와 진 것이 안심이 되기도 했다.
명절날 갑자기 초상을 치기 위해 장금이는 제일 먼저 다니는 직장에 연락을 했다. 그다음 강아지 맡길 곳을 찾기 위해 분주히 보냈다. 다행히 강아지를 맡길 데가 생겼다. 그리고 기차표를 알아보았다. 다음날 아침 첫 기차표가 두 장 남아 있어서 간신히 표를 구했다. 장금이는 한밤중에 직장에 들러 지난 주에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장금이는 밤 열두 시에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삼일장을 치르는 동안 필요한 짐을 꾸리고 침대에 누웠다. 극도로 긴장된 장금이의 몸은 바들바들 떨렸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한 시간 눈을 붙이고 새벽 기차를 타기 위해 일어나야 했다. 장금이가 탄 새벽 기차의 다른 칸에는 장금이 보다 더 이른 시각에 기차를 탄 장금이 외사촌 세 명과 외사촌의 아이 두 명이 타고 있었다. 한 시간 후에 장금이의 남동생 장학이도 그 기차를 탔다. 기차가 서울에 도착한 후 장금이와 일행은 서초동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야 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후 장금이는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하루 늦게 시작한 삼일장의 첫날은 분주했다. 아마도 일요일이라 조문객이 많았으리라. 조문객들의 대부분은 지방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장금이 큰오빠 장군이의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이었다. 간혹 얼굴이 꽤 알려진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교수들이나 박사들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장금이 올케 언니의 동료 교사와 친지들도 조문을 왔다. 장금이는 이전 장수 오빠의 장례식에서처럼 너무 쓸쓸하게 삼일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친정 엄마의 부고 소식을 알렸다. 첫날 오후에는 장금이의 친한 친구들이 조문을 왔다. 저녁에는 장금이의 대학 동기와 그녀의 동거남이 조문을 왔다. 대학 동기가 조문을 왔을 때 하필 방송계에서 꽤 유명한 장금이의 먼 삼촌과 숙모가 조문을 와서 장금이는 삼촌과 숙모에게 간단히 인사만 했다. 장금이의 삼촌은 현재 투병 중이시라 사실 엄마의 부고를 알리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큰오빠의 부탁에 의해 장금이는 할 수 없이 숙모님께 간단하게 문자만 드렸다. 몸이 불편한 분께 조문을 오라고 하는 것 같아 영 내키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장금이의 고등학교 후배들이 찾아왔다. 장금이의 후배 중 한 명은 장금이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였는데, 신랑 들러리였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장금이는 외국 기업에서 일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인으로 다른 동료들의 조문을 받지 못했다. 장금이 후배는 장례식장 조그만 방에서 처박혀 괴로워하는 장금이 딸을 위해서 컬러링북과 직접 만든 브라우니도 가져다주었다. 후배가 장금이가 다니는 기업의 이름으로 화환을 주문했다는 말을 듣고 장금이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후배가 다녀간 이후 장금이는 점점 불안해졌다. 저녁에 장금이 언니 장녀가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도착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장녀 가족의 도착 시간에 맞춰서 입관식을 몇 시간 지연시켰는데 장녀는 입관식이 끝나도록 도착하지 않았고 결국 장금이 엄마의 시신은 얼굴만 남겨둔 채 봉합된 후 관 속에 넣어졌다. 내일 아침 장녀가 엄마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후 장금이 엄마의 얼굴을 싸매려면 관 뚜껑을 다시 열어야 했다. 장금이가 장녀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육 년 전 장수 오빠의 장례식에서였다. 하지만 그때 둘은 인사도 하지 않았다. 장금이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장녀 언니와 얼마나 어색할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둘째 날 호실을 바꾸는 바람에 더 좁아진 가족 대기실에 더 많은 친지들과 같이 지내려면 장금이는 빨리 씻어야 했다. 장금이가 샤워를 하고 머리까지 감고 이를 닦고 있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장녀가 장례식장에 들어선 것이다. 장금이는 장녀에게 인사를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장녀가 격하게 오열하는 소리를 듣고 되돌아 서고 말았다. 다시 장례식장이 조용해진 후 장금이는 장녀에게 짧게 인사를 했다. 새벽 한 시경 조문객들이 모두 돌아가고 장금이는 잠을 자려고 식당 바닥에 누웠다. 그런데 엄마 영정 사진이 놓인 방에서 시끄럽게 다투는 소리가 들려서 장금이는 일어나서 가 보았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장금이 큰오빠 장군이가 장녀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장녀가 장군이에게 형제들 앞으로 나오는 보험금을 내노라고 한 것이다. 그간 장례 수속과 조문객 접대로 바빴던 동생들에게 위로와 격려 또는 장례 비용에 관한 일절의 말도 없이 오자마자 돈을 내놓으라니 장군이로서도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장군이는 낮에 동생 장금이가 올케언니의 큰 오빠 내외가 방문했을 때 목 메인 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그간 올케 언니 너무 고생 많았고 동생이 시어머니 간병하느라 그 오랜 시간 힘들어하는 것 보며 얼마나 속이 많이 상하셨겠냐고 한 것을 들먹이며, 누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동생들 생각은 일절 안 할 수가 있냐며 나무랐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에 장례식장에 남아 있는 장금이 가족 친지들이 모두 잠이 든 시각은 새벽 세 시가 지난 후였다. 피곤에 지친 사람들이 식당 바닥에 놓인 테이블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잠이 들었는데 그중 유난히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한 사람들이 세 명 있었다. 장금이와 장금이의 딸도 겨우 잠이 들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 아침을 먹어야 했다. 장례식장에서 하는 일곱 번째 식사였다. 간단히 제를 지내고 일행은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고 화장터로 향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장금이 가족은 대기실을 배정받았고 그곳 모니터 화면에 <화장 중>이라는 표시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대략 한 시간이 지난 후 모니터 화면의 표시는 <냉각 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일행과 가족은 고인의 유골을 확인하러 내려갔다. 장금이 엄마의 시신은 어느새 뼈로 변해 있었다. 그런데 뼛속에서 긴 철사와 나사가 나와서 혹시 시신이 바뀐 것이 아닐까 하고 재차 확인을 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녀가 그 소식을 듣고 들어 와서 엄마가 예전에 팔 골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의 유골을 들고 장금이 가족은 고인의 유골을 모실 장지로 향했다. 장금이 가족은 수목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장지에 도착해서 터를 고르기 위해 여기저기 보니 그중에 장금이 눈에 쏙 들어오는 나무가 있었다. 장금이 가족은 그곳에 엄마 유골을 모시기로 결정을 했다. 장금이 엄마의 유골은 유가족들이 돌아가며 한 삽 씩 흙을 덮어 잘 묻었다. 그리고 장금이 가족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하필 설렁탕 집이었다. 장금이는 설렁탕을 먹고 싶지 않아서 만두를 시켰다.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장금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산을 마쳤다. 장금이는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엄마 장례식을 무사히 마친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가족은 버스를 타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장군은 서울에 있는 집으로, 장녀는 호텔로, 장금이와 장학이는 장례식 첫날 타고 왔던 기차를 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했다. 장금이는 맡겨둔 강아지를 데려 오기 위해 연락을 넣어 두었다. 다행히 강아지 돌보는 사람이 강아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장금이는 그 사람들의 친절에 너무 고마웠다. 저녁 시간이었지만 장금이는 다음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장례식장에서 입었던 옷들을 모두 빨고, 깨끗이 샤워도 했다. 장금이가 잠을 자려고 누우니, 낮에 본 엄마의 유골이 뇌리를 스쳤다. 사람의 몸이 한 시간 만에 한 줌의 가루로 변하는 것이 너무도 허무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