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맛

by 별똥꽃

장금이네 가족은 국수를 거의 먹지 않았다. 장금이 엄마가 밀가루로 된 음식을 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장금이 엄마는 떡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장금이는 엄마가 떡을 정말 좋아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명절 때마다 떡을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엄마의 계략이었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장금이가 살았던 작은 마을은 반농반어촌이라고 할 수 있는 읍에서 외곽으로 떨어진 곳이었다. 읍내에서 서쪽으로 주욱 들어가면 다른 도시에 닿기 전에 나오는 그 읍의 마지막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읍내는 바다와 가까웠고, 장금이의 동네는 작은 산으로 둘러 싸인 곳에 몇몇 세대가 작은 밭에 농사를 지었다. 마을에는 큰 군부대와 자개 공장이 있었다. 그리고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 구멍가게에서는 아이스크림, 과자, 담배, 술, 생필품 등을 팔았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았고, 그 가게에 있는 것 마저도 있다가 없다가 하는 말 그대로 구멍만한 가게였다.


반농반어 지역이다 보니 장금이 가족이 주로 먹은 음식은 생선과 채소였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일 년에 한두 번 구경할까 말까였다. 닭고기도 마찬가지였다. 장금이 동네와 이웃 동네가 같이 마을 주인 단합대회 같은 걸 하는 날에는 동네 여자들이 손잡이가 달린 큰 원통 냄비에 소고기가 헤엄치고 간 뭇국을 끓였다. 아마 무 고춧가루 장국 같은 거였나 보다. 국 한 그릇에 소고기가 한토막 들어갈까 말까 했지만 장금이는 그 국이 맛있었다. 배고팠던 시절 뭐든 맛이 없었겠는가? 마을 축제가 열리면 장금이 엄마는 배운 적도 없는 장구를 둘러매고 곧잘 치곤 했다. 술병 난 남편을 병원에 보내고 홀로서기를 몇 년간 하던 차에 노래와 춤만큼 신명 나는 것은 없었으리라! 그때 장금이 엄마는 겨우 사십 대 초반으로 혼자 살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장금이가 자랄 때 쌀이 없어서 대체 음식을 먹어야 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주로 보리나 감자, 옥수수 그런 음식이었다. 쌀밥보다는 보리밥을 먹을 때가 많았고, 흰쌀밥은 거의 구경하기 힘들었다. 평소에는 쌀과 보리가 반반 섞인 영양식이었는데 장금이는 어릴 적에 보리밥 아주 싫어했다. 장금이는 지금도 삶은 감자나 옥수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끼니 대신 먹은 음식이라서 가난과 고통의 맛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장금이 동네에는 총 열 가구가 있었다. 그 열 가구 중에 세 가구는 노인 가구였다. 그러다 보니 장금이 마을에는 여시 같은 할매가 셋이나 있었는데, 남의 집 일에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그녀들의 공통된 취미였다. 동네 사람들은 평소 여시 할매들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잘 피해 다였다. 참 우연스럽게도 그 할매들의 집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장금이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할매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큰 아들은 동네 입구 근처 이차선 도로에서 개장사를 하며 도로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도넛을 만들어 팔았고 작은 아들은 읍내에 살고 있었다. 다른 할매는 아들이 판사여서 최판사 할매로 알려져 있었다. 세 번째 할매의 아들은 형사였는데, 아들을 네 명 낳은 후에 딴 여자와 바람이 나서 늙은 부모에게 처자식을 맡겨 두고 집을 나가버렸고, 그 집 며느리는 바람난 남편과 시집살이에 지쳐 결국 도망을 치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은 그집 며느리에게 틈만 나면 빨리 떠나가서 본인의 인생을 찾으라고 충고했었다. 장금이 엄마도 그중 한 명이었다. 장금이 엄마도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금이 엄마는 애들을 데려다 줄 시부모님이 없었다. 장금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각각 병으로 돌아가셨다.


하루는 최 판사 집에서 잔치를 하는 날이었다. 판사 아들은 사실 그 동네에 살지 않았고, 최 판사 부모는 벙어리 딸이 맡겨둔 손녀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정확하게 무슨 잔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네 어른들과 외부 손님들이 많이 초대받았고, 초대받지 못한 동네 아이들은 최 판사 집앞에서 떡고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 장금이 손에 떨어진 것은 알록달록 곱고 예쁜 무지개 떡 하나였다. 장금이는 그날 무지개 떡을 난생처음 먹어 보었다. 장금이 입에 닿은 무지개 떡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장금이는 그때 그 맛을 떠올리기 위해 어른이 된 후 무지개 떡을 사 먹어 보았다. 그런데 그냥 여러가지 색깔이 있는 백설기 맛이었다. 장금이는 무지개 떡 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장금이가 처음 먹어본 무지개 떡 맛이 기억 속에서 왜곡된 건지 알지 못한다. 어른이 된 장금이는 떡 파는 곳이 있으면 항상 무지개 떡을 찾고 있지만, 무지개 떡을 만드는 곳은 거의 없다. 장금이가 처음 먹어 본 무지개 떡은 장금이의 기억 속에 무지개 맛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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