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서니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by 별똥꽃

일단 집을 나왔다

딱히 갈 곳이라고는 강가가 전부다

그마저도 갈 수 없던 시기가 있었으니

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도시의 악명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이제 겨우 오월 중순인데 찜통같이 덥다

선크림이 땀이 되어 흘러내린다

눈에 흘러내릴까 두려워 휴지로 닦았다


마스크 안의 사정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하지만 벗을 수 없으니 불편해도 참는 수밖에

띵딩딩하는 신호음과 함께 안내방송이 나왔다

매일 오후 네 시 십 분에 나오는 코로나 방송이다


계절은 몇 번 바뀐 것 같은데 상황은 여전하다

누가 보균자인지 알 수 없으니 사람이 무서운 때다

다가오는 것도 다가가는 것도 두렵다

아니 스쳐가는 것조차 신경 쓰인다


다리를 몇 개 지나고 분수에 이르렀다

쏟아오르는 물줄기가 잠시 더위를 식혀주었다

무심한 척 지나치다가 이내 돌아왔다

비좁은 길을 더 이상 곡예하듯 걷고 싶지 않았다


분수를 바라보며 내 분수를 생각하노라니

내 맘을 모르는지 분수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수양버들 뿌리에 멍하니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함부로 뻗은 뿌리도 일찍 떨어진 버들닢도

흩어진 가지도 뒹구는 돌도 다 나름대로 예쁘다

바람이 부니 내 몸의 열도 식는 듯하다

멈춰 서니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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