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고 남편은 하루 유급 휴가를 받았다. 하와이에서 처음 맞는 태풍이라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먼저 차고에 차를 넣은 후에 밖에 있는 그릴,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 등을 실외 창고로 옮겼다. 집 주위에 큰 나무들이 없어서 다행이다.다음 주말에는 과수들을 심을 계획이다. 혼자서 한다면 굳이 다음 주말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만 아무래도 나무를 심으려면 땅을 파야하기 때문에 남자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집을 구할 때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대지였다. 과수와 야채그리고 화초를 맘껏 심을 수 있는 땅. 남편 직장과 비교적 가까운 도시에 집을 구하다 보니 에이커 당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 생각한 10 에이커의 절반도 안 되는 3 에이커에 만족해야 했다.) 남편은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일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살 때 남편의 통근 시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수는 대지의 경계 표시와 가까운 곳에 심을 것이다.
아보카도, 애플 바바나, 산사과, 노니, 감귤, 빵나무, 야자수, 스타 푸루트, 망고, 파파야, 파인애플 등을 심을 계획이다. 대지 경계와 가까운 곳에 심어야 하루에 한 번씩 주욱 돌아보며 운동도 되고, 혹시 우리 집 주위를 배외하는 배고픈 사람에게 요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무 옆에 <배고프신 분은 드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어 둘까? 망설여진다. 나무가 다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어차피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예전부터 꼭 키우고 싶은 나무들이 있는데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그리고 모과나무다. 하와이에서 이런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지 모르겠고, 모종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앞으로 더 연구해 봐야 할 것 같다.
태풍은 온다는데 나는 주말에 과수를 심을 생각으로 들떠있다. 이참에 이 집이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진 집인지 확인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창을 다 닫았더니 실내가 약간 답답하다. 나는 그래도 견딜 수 있는데, 다혈질 남편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피자와 라면을 먹기로 했다. 남편이 오븐에 피자를 굽는 동안 나는 스토브 탑에 라면을 삶을 물을 끓였다. 둘이서 먹기에 라면 하나와 피자 하나면 많은 양이다. 남은 피자를 다 먹으려면 식사 후에 영화를 보면서 간식으로 야금야금 먹어야 할 것이다. 무슨 영화를 볼까?
집 안에서 요리를 하고 밥을 먹는 것은 왠지 갑갑하다. 태풍도 견딜 수 있는 야외 주방을 만들고 싶다. 그릴, 피크닉 테이블과 의자를 옮길 필요도 없이 항상 두고 쓸 수 있는 공간을 말이다. 일단 설계도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건물을 지으려면 아마 시에서 허가부터 받아야 될지도 모른다. 직사각형 정자처럼 생긴 구조에 중앙에 아들과 딸의 가족까지 다 앉을 수 있도록 상당히 긴 아일랜드를 두고, 음식을 손질할 수 있는 주방이 안쪽에 있고, 개폐 가능한 강력 유리문을 사방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건 남편과 아직 상의해 본 건 아니다.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야외 주방과 가까운 곳에 채소밭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드라이버 웨이에 야생화도 심어야 하고 집 앞에 꽃 밭도 가꿔야 하는데, 일단은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 놓고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이 좋겠다. 집 뒤에는 저쿠지와 수영장 중에 뭘 놓을지 고민 중이다. 출가한 아이들 가족이 찾아왔을 때는 아무래도 수영장이 더 유용할 것 같은데, 평소에 그다지 사용할 일도 없을뿐더러 관리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낭비다. 저쿠지 또한 그다지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현실성을 따져서 이건 일단 보류.
우리 부부는 50대에 빚 한 푼 없이 집과 땅을 산 걸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빚 한 푼 없이 정원, 채소밭, 과수밭을 만들 계획이라 일이 얼마나 빨리 진행될지 모르겠다. 이제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므로, 꼬박꼬박 들어오던 나의 월급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행복과는 바꿀 수 없다. 돈 자체에서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이나 돼야 태풍이 완전히 소멸할 것 같다. 본토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둘 다 직장 때문에 본토에 남았는데, 딸린 가족이 있는 아들이 하와이로 오기는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그래도 휴가나 명절 때라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내 머릿속에는 이미 태풍이 스치고 지나간다. 때마침 라면과 피자로 차려진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나는 무슨 영화를 볼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