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Dec 20. 2020

호텔에서도 뛰네요... 훨

층간소음을 피해 호텔 간 날

일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삼십 분 후에 소음 녹취기를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다행히 소음 녹취설치하기로 한 사람들보다 먼저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후 대략 오 분 후에 초인종이 울렸다. 두 사람이 삼각 다리 위에 장비를 설치하는 동안 그 사람들이 가지고 온 서류를 작성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은 끝이 났고, 사람들은 장비와 종이 한 장을 남겨둔 채 떠났다.


코로나 창궐 이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영락없는 집순이가 된 아이가 어쩌면 호텔 근처에 사는 친구들과 볼링을 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길래, 집에서 샤워를 다 하고 가서 호텔에서는 잠만 자기로 했던 애초의 계획을 바꿔 급히 일박에 필요한 짐과 강아지 물건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하지만 볼링을 치겠다는 아이는 없었다. 올해의 방학과 휴가는 끝없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봄방학도 여름 방학도 크고 작은 명절도 다 집에서 보냈고 크리스마스 휴가마저 방콕이 예정되어 있다.


호텔 프론 데스크에서 체크인 수속을 밟고 3층 호텔 건물에 딸린 임시 애완동물 보호소 건물의 열쇠를 받아 문을 열었더니, 애완동물 우리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건물 맨 끝에 있는 우리 속의 개는 나와 아이가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서자마자 계속 짖어댔다. 그 옆의 강아지는 짖지는 않았지만, 똥을 대략 열 개는 싸 놓았다. 우리 집 강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이와 나는 강아지가 있을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미리 준비해 온 강아지 물과 음식과 함께 우리 속에 강아지를 둔 채 자물쇠를 채웠다. 아이는 시끄러운 개 때문에 그곳에 있을 강아지가 불쌍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낯선 곳에서 혼자가 아니라 다른 강아지와 같이 있게 돼서 오히려 맘이 놓인다고 했다.


강아지를 우리에 가두고 호텔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방으로 들어섰다. 올해 들어 처음 와 보는 호텔이었다. 방안에는 침대가 두 개 있어서 좋았다. 나는 충 짐 정리를 한 다음에 씻었다. 호텔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너무 셌다. 그래도 씻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아 들리기 시작했던, 너무도 익숙한 쿵쿵 쿵쿵 뛰는 소리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방 한 칸 호텔에서 어떻게 뛰어다닐 수가 있을까? 어떻게 저런 소음을 만들 수 있을까? 층간 소음 때문에 오게 된 호텔에서 또다시 층간소음을 겪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썩소를 지으며 호텔 전화기를 들고 프론 데스크 직원과 통화를 했다:


나: "두 시간 전에 체크인을 했는데요. 위층에서 아이가 계속 뛰고 있어요. 언제 멈출지도 모르고 아무래도 방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저희가 안 그래도 층간 소음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됐거든요."

직원: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방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나: "잠깐 아이와 상의해 볼게요."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사춘기 아이가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 "아이가 싫다고 하네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직원:" 제가 일단 윗방 손님에게 연락을 서 소음을 내지 않도록 양해를 구해 볼게요."

나: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후 다시 프론 데스크에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까지, 대략 십 정도 조용했다. 윗 층 손님은 애를 재운다고 했다더니, 호텔 직원과 두 번째 통화를 마친 후 다시 소음은 시작되었고 체크인 한 지 세 시간 이후에 나는 프론 데스크에 다시 전화를 해서 아무래도 방을 바꿔야겠다고 했다. 짐을 싸들고  내려가 호텔 로비에서 다시 열쇠를 받았다. 새로 얻은 방은 3층, 소음을 만든 방의 맞은편 방이었다. 소음을 만든 방 앞에서 잠시 귀를 기울여 보니 부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뛰는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려고 하니, 우리 아이가 빨리 방에 들어가자고 재촉을 했다.


새로 온 방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었다. 화장실 불을 켜니 환기통에서 나는 소리가 윙윙 거리기 시작하더니 스위치를 끈 후에도 몇 분간 지속되었다. 겨우 이런 곳에서 지내려고 큰돈 들여 호텔을 얻었나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뿐, 종일 일하고 직장에서 집으로 그리고 집에서 호텔로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체크인을 두 번이나 하고 나니 온 몸이 너무 피곤해서 새 방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돼서 히터 돌아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 이십 분, 악몽을 꾼 후 잠이 깨고 말았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누워 있어도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그리고 티브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옆방이려니 생각했다. 그래도 한밤중 티브이 소리는 뛰어다니는 소리에 비하면 참을만했다. 아침에 호텔에서 주는 아침밥을 먹으러 내려가다가 알게 된 건데, 티브이 소리는 옆방이 아니라 건너 방에서 나고 있었다. 애 뛰는 소리로 우리를 다른 방으로 옮기게 만들었던 바로 그 방이었다. 


바나나 두 개와 시리얼 그리고 머핀을 호텔방으로 가져와 아이와 나눠 먹고 다시 자려고 누웠다. 다행히 열두 시 체크 아웃 시간보다 한 시간 더 늦게 체크 아웃을 해도 된다고 허락을 얻었다. 강아지를 찾은 후에  호텔 키와 애완동물 보관소 키를 모두 반납한 시각은 한 시 이전이었다. 강아지가 자꾸 칭얼대어서 신경이 쓰였다. 식당에서 점심을

픽업한 후에 직장으로 향했다. 아이가 직장 건물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틀 전에 이미 직장 상사에게 강아지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주말 오후에서 늦은 밤까지 직장 와 있을 거라고 말해 두었지만 어쩔 수 없이 주차장에 아이와 강아지를 두고 휴가 중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했다. 하지만 곧 피곤해져서 아이와 강아지에게로 돌아갔다. 패스트푸드 음식점 드라이브 스루에서 저녁을 시켰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 안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아직 소음 녹취가 끝나려면 시간은 2시간 반 정도 남았는데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단다. 잠시 집에 들를 수도 있었지만, 시간도 때울 겸 다시 직장으로 가서 볼일을 보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왔더니 시간이 한 시간쯤 더 흘렀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 간간히 주차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투와 바지가 바람에 휑하니 쓸리는 것이 보였다.  안에 앉아 있어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두꺼운 등산 양말을 신고도 발가락은 꽁꽁 얼었고, 청바지 속의 무릎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이와 강아지는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한겨울에 난데없이 홈리스 체험을 하고 있었다. 층간 소음 피해 기간 2년 4개월 그리고 층간소음 이웃센터 등록 후에 기다린 기간 총 10개월...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그동안의 기다림을 헛되이 할 수 없었다. 녹취 시간이 대략 30분 정도 남았을 때 아파트를 쳐다보니, 우리 집에는 희미한 불빛이 보이고, 윗집에는 환한 불빛이 켜져 있었다. 녹화 종료 시간 대략 10분을 남겨 두고 강아지 산책을 시킨 후에 현관문 앞에 도착하니 아직 2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계단을 통해 윗집에서 소음이 나는지 확인했다. 시끌벅적 요란스러웠다.


층간소음을 피해 간 호텔에서 조차 층간 소음을 겪으며, 한겨울에 느닷없이 홈리스 체험까지 하며 힘들게 겨울 휴가 첫날을 보냈다. 집에 오니 녹취 예약시간은 끝이 났는데, 아직도 장비는 돌아가고 있었다. 제발 오작동된 것이 아니길. 윗집의 요란한 정체가 낱낱이 밝혀지길 바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티 없는 생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